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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글쓰기를 시작했다 ②]

▲ ⓒ픽사베이

[김민태 EBS PD] 장문의 글을 처음 썼을 때를 떠올려 본다. 마치 일기를 쓰는 느낌으로 오래된 기억을 호출해 냈다. 글의 종착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만의 자서전을 쓰는 느낌이랄까? 먼 훗날 나를 아는 사람이 보고 기억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몇 글자씩 적다보니 페이지가 한 장 두 장 넘어가기 시작했다.

알람을 켜지 않고도 새벽 5시면 눈이 떠졌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상 시간이 두 시간이나 앞당겨졌다. 아침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샤워하고 커피 내리고 출근할 옷을 고르고 나면 어김없이 노트북을 켰다.

아침은 오로지 나의 생각이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가 빈번하게 교감하는 시간. 나를 위한 무대에서 좌뇌와 우뇌라는 스태프가 깨어나 왕성하게 움직였다. 이 기분이 나를 계속 쓰기로 내몰았다. 그 기분을 또 느끼고 싶었다. 기를 쓰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안 될 거라 생각했던 네 가지

목적이 바뀌니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대표적인 게 관찰이다. 주변인들의 삶을 유심히 보게 됐다. 먼저 산 사람들의 말도 귀에 더 잘 들어왔다. 자연스레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에 포함시켰다.

글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료조사도 병행했다. 주제가 어느 정도 잡히면서 제목도 붙여 봤다. <가제 : 스펙의 역습>.

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원고를 봐달라고 요청했다. 기대감이 얼굴에 드러나서였을까? 부담을 느꼈는지 쉽게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몇 주 뒤 답변이 왔다. 삼십대로부터의 공감은 있는데 예상 독자층이 이십대라 고민이 된다고 했다. 안 팔릴 것 같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다.

실망을 감추고 출판사 몇 곳에 독자 투고 형식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두 군데서 긍정적인 답변이 되돌아 왔다. 그렇게 해서 마흔에 되돌아 본 직장과 일에 대한 이야기, <일생의 일>(2013)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낸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막연한 소망은 있었지만 목표로 세워본 적은 없었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안 되는 이유는 많았는데 추려 보면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마흔 무렵에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언급하는 게 주제 넘는 짓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책을 쓸 만큼 이야깃거리가 두툼할 거라 생각지 못했다.

세 번째, 나의 사변적인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네 번째, 짬을 내서 글을 쓸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일을 낸 거다. 그러나 결코 계획을 세운 일이 아니다. 시작은 ‘첫 문장’이었고 세 문장이 마음을 흔들었다. 에디터도 강한 에너지를 느꼈던 것 같다. 문장은 끝까지 살아남아 책 표지를 장식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조금씩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썼는데 이야기가 커져갔다. 생각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뉴스도 찾고, 책도 뒤적거리면서 조금씩 사회적 의미를 붙였다.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됐다. 책의 흥행을 떠나 나에겐 인생 사건이 됐다. 쓰면서 너무나 많은 게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꼭 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기적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나를 흥분 시킨 건 출간이 아니다. 책을 내본 사람은 안다. 잔치의 여흥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글을 쓰는 내내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다. 돌파해야 할 장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쓰는 이유는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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