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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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④] '피, 땀, 픽셀'
  • 오학준 SBS PD
  • 승인 2018.10.23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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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이든 방송이든 결국 누군가의 피, 땀, 눈물로 범벅될 수밖에 없는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PD저널=오학준 SBS PD] 중학교 시절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컴퓨터부터 켰다. 그리곤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서 쪽지부터 확인했다. 쪽지엔 오늘 만들 패치에 대한 팀원의 의견이 쭉 적혀 있었다. 그 때 나와 몇몇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한 축구 게임의 패치를 만들고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이름, 어색한 유니폼, 삭제된 신, 밋밋한 배경처럼 바꿔야 할 게 산더미인 게임을 좀 더 ‘하고 싶은’ 무언가로 만드는 일은 밤을 잊을 만큼 즐거웠다.

그래서 한 때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진짜 인생에선 시도도 못해볼 일들을 대신 체험하고, 성과를 달성하며 즐거움을 얻는 이 게임을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아마 좋아서 기절해버릴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밤이 늦도록 데이터를 수정하고,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일에 대한 동경은 꽤나 오래 지속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년기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대신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고, 밤늦도록 촬영해서 편집하고,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일 말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정답이 없고, 내 놓았을 때의 반응은 예측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밤과 친구가 되기 좋은 그런 일을 하는 건 비슷했다.

오늘도 이렇게 친밀한 밤을 맞이하나 고민하며, 목동의 등대 높은 곳에 앉아 쌓여 있는 자료를 보던 중이었다. 알람 설정해 두었던 게임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피에 젖은 게임인가, ‘레드 데드 리뎀션 2’ 주 100시간 근무 논란’이란 제목이었다. 어느새 나는 자료를 옆에 밀쳐두고 글을 읽고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전작을 좋아해서 발매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게임 제작사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 외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당 100시간 근무를 여러 번 하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게임이 얼마나 방대한지, 그리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아래엔 그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피에 젖은 게임을 칭찬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기대하던 게임에 사람들의 피와 땀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책상 앞 서가엔 <피, 땀, 픽셀>이 꽂혀 있었다. 윈스턴 처칠의 전시 수상 취임 연설 속 한 구절을 비튼 이 책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완성된 게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방법과, 방송을 완성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방법이 너무나 비슷해서, 마치 방송계 뒷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나갔던 책이었다.

방송도 마찬가지지만, 게임 개발이라는 건 시작부터 무엇 하나 예상대로 되는 게 없다. 투자금은 늘어지는 일정에 바닥나고, 둘도 없던 동지가 원수로 돌변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버그들은 철야를 부르지만, 막상 고생해서 내놓은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평가에 절망하기도 한다. 금세 개발자들의 열정, 체력, 자금 모두 바닥을 치지만, 소비자와 배급사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선 목적지까지 달려야만 한다. 그러니 개발이라는 건 언제나 재난 상황인 셈이다.

저자인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매체의 기자로서 다수의 개발자들을 만나 그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하며 게임을 만들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적나라한 표현까지 해 가며 그들의 고통스런 개발 현장을 묘사하면서도 그는 이 책을 보고 게임 개발이 하나 같이 지옥불이라고 착각하길 원치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사례가 그렇듯이 생각보다 많은 경우 게임 개발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자인 나는 그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해피엔딩’이라 하기에는 그 그늘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눈물이 너무 많이 행간에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철야’나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들이 포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유쾌한 문장들 뒤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개발 초기에, 어떤 사람은 개발 중간에, 또 어떤 사람은 개발이 끝나가는 와중에 자신의 인생을 던졌던 회사에서 쫓겨났다. 비용 때문에, 바뀐 환경 때문에, 새로운 투자자 때문에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담길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그들의 목소리가 없는 ‘해피엔딩’은 누구를 위한 결말이었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다보면, 개발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쏟아내는 열정, 능력, 끈기에 감탄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팀원들을 독려하고 자신도 함께 철야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자세를 보며 내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곤 한다. 그리하여 입에 욕을 달고 살아도 좋을 환경에서 결국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힘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그 열정과 능력, 끈기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모두가 좋은 결과물을 내자고 생각하는 건 같지만, 삶의 어느 부분을 희생하고 어느 부분으로 보상받을지에 대해선 모두가 조금씩 기준이 다를 것이다. 특히나 고치면 고칠수록 결과물이 달라지고, 모두가 인정하는 공통의 기준이 없는 작품을 만들 때 종종 팀의 수장은 따르는 사람들이 나처럼 인생을 갈아 넣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내게 보상이 될지 아닐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게임 개발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가족 덕분에 덜 불편할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일에 너무 몰두하면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사려 깊게 모두를 배려하는 일은 쉽지 않고, 종종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던 회사로부터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임이든 방송이든 결국 누군가의 피, 땀, 눈물로 범벅될 수밖에 없는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언제나 좋아하는 게임이지만, 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그늘 뒤에서 울며 과로해야 한다면 나는 이 게임을 어떻게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반대로, 언제나 좋아하는 방송이지만, 그 방송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그늘 뒤에서 울며 과로해야 한다면, 나는 이 방송 프로그램을 어떻게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늦은 밤 등대의 불을 끄지 못하는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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