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그늘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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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스트라이트 폭행 사건’ 논란, 무대 뒤에서 우는 아이돌은 또 없을까

▲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 이석철(16) 군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속사인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 문 모씨가 멤버인 승현 군 등 에게 상습 폭행을 했고 김창환 회장이 폭언과 폭행을 방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PD저널=허항 MBC PD(<쇼! 음악중심> 연출)] 최근 이슈가 된 ‘더 이스트라이트 사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더 이스트라이트는 10대 소년 6명으로 구성된 보이밴드로, 2016년 데뷔해 최근까지 활발하게 음악방송 출연과 공연 활동을 펼쳐왔던 친구들이다.

긴 공백기 없이 꾸준히 음원을 내오던 그룹이라 <쇼! 음악중심>에서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라이브와 무대 매너, 그리고 10대 특유의 해맑은 에너지가 시청자들에게도 꽤나 신선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변성기를 겪는 과정을 앨범 앨범마다 고스란히 보여주는 모습이 참 귀엽기도 했다.

그랬던 그들이 소속사 PD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폭행 등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 나는 몇 번이고 헤드라인 속 그룹 이름을 확인해야만 했다. 내가 알던 그 밝은 그룹의 이야기가 맞나? 무대 위에서 뿐 아니라, 생방송 후 사적인 인사 자리에서도 싹싹하고 귀여운 웃음으로 제작진을 흐뭇하게 하던 그 친구들이 몇 년 동안 저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니.

교복을 입고 취재진들 앞에서 조목조목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며 오열하던 더 이스트라이트의 맏형 이석철 군의 표정은 차마 볼 수 없어 스크롤을 내렸다. “다시는 음악을 못하게 될까 봐, 그동안 당한 일들을 부모님께도 말씀 못 드렸다”는 석철 군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다. 대한민국 아이돌이 본인의 소속사를 저격한다는 것은, 음악의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당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돌은 태생적으로 ‘소속사’라는 절대적인 울타리 안에서 선발되고 만들어지는 존재다. 소속사에서 추구하는 ‘콘셉트’에 따라 몇 년에 걸쳐 트레이닝을 받은 아이돌들은, 데뷔 후에도 계속해서 소속 소속사의 보이지 않는 손 안에 있다. 음악적 이미지는 물론 외모, 말 한마디까지 소속사가 늘 체크한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견고한 구조다. 소속사는 아이돌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계속해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해야하고, 아이돌 입장에서도 소속사라는 존재가 없으면 본인도 존재하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물론 요즘은 소속 아이돌들을 가족처럼 존중하며 돌보는 회사들도 많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소속 아이돌들을 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

아이돌 음악 프로그램 연출자인 나는 요 며칠 혼란스러운 마음과 마주하고 있다. 내가 매주 토요일 만나왔던 저 (밝고 예쁜) 친구들은, 정말 밝고 예쁜 일상을 살고 있는 친구들일까. ‘쇼! 음악중심’을 연출해온 1년 반 동안 아이돌과 쌓은 친분이, 진짜 친분일까. 나는 저 아이돌들에 대해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음악방송 연출자가 되면, 아이돌들과 마음껏 음악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꿈에 대해 듣고 .인생선배로서 상담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연출자가 아이돌과 대면하는 시간은 생방 당일 5분여가 채 안 된다.(소속사 관계자들과는 많게는 몇십 분씩 매일 만나게 되는 것과 달리.)

그나마 3~4분은 그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니 시청자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나머지 1분은 생방 직후 대기실에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인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도 아이돌 특유의 정제된 인사, 정형화된 덕담으로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니 더 이스트라이트 친구들이 평소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 이스트라이트의 소속사 측도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어 진실이 무엇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밝은 에너지를 자랑했던 그들에게 정반대의 민낯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참 복잡하다. 설사 미리 눈치를 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한층 더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미 멍들대로 멍들어 있었을 속마음은 모른 채 그저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한마디 섞고 보냈던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뒤늦게나마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부당하게 담보 잡혔던 음악의 꿈을 다시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혹여나 무대 위의 밝은 모습 뒤로 아파하는 아이돌이 또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프로그램 연출에만 충실해도 모자랄 음악방송 PD의 오지랖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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