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우리 아이’, 가족이 되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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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헌신한 40대 가장 타타카 통해 가족 안의 갈등과 해소 과정 세밀하게 담아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이보다 더 성실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남자, 타나카. 늘 깔끔하고 세련된 옷차림과 잘 빗어넘긴 머리, 온화하고 정직해 보이는 얼굴로 고액연봉을 받는 회사를 꼬박꼬박 다니고 퇴근 후에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단란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 남자 타나카의 삶이다.

하지만 타나카도 세상의 쓴 물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는 그와의 결혼생활뿐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여자였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삶과 일상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 그들은 헤어졌고 둘 사이에서 난 딸 사오리는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1년에 4일. 지금의 딸들도 소중하지만 사오리를 만나는 그 시간은 그에게 무척이나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타나카에게 삶이 조금씩 숨통을 조여 온다. 일과시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퇴근 이후 딸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나 장난감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그를 회사에서는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온 몸과 마음을 바쳐 회사에 충성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그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창고 업무부서로 파견되고 퇴근 시간이 지켜지고 연봉이 그대로라면 큰 상관없다며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행복한 시간이 지속될 것만 같았던 그에게 찾아온 고민은 바로 그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을 쏟는 가족들에게서 불거진다.

지금의 아내가 전남편에게서 낳은 두 딸 중 큰 딸 카오루가 마음을 닫아버리고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어린 에리코에게 지금의 아빠는 진짜가 아니라며 매몰차게 말하는 카오루를 보며 타나카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 오는 11월 1일 개봉하는 <친애하는 우리 아이> 스틸컷.

우리 모두는 가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이면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고 태어날 때부터 눈을 감는 그 날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의 연대감 혹은 갈등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참 헤아리기 어렵다. 영화 <친애하는 우리 아이>는 바로 이런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혼을 하고 서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그들의 이야기. 그들 사이에서 일어날 만한 혹은 일어날 거라고 짐작되는 이야기를 그저 이리저리 엮은 영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야기는 타나카라는 가장을 중심으로 전처와의 딸과 지금 아내의 딸의 대비를 통해 친부모와 친자식이라는 한 줄을 풀어낸다. 거기에 카오루의 동생 에리코와 지금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로운 동생의 관계로 또 한 줄. 사오리를 친 딸처럼 잘 키워주고 아껴준 전처의 남편의 병사라는 플롯으로 또 한 줄. 엄마와 지금의 아빠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과 동생이 버림받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불안정에서 야기된 질투와 걱정을 괜한 투정으로 표출하는 카오루의 이야기까지.

영화는 등장인물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유발되는 감정이 일상 속에 어떻게 파고들고 해소되는지 조용하고 깊은 시선을 바라본다. 이 영화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타나카의 ‘가족’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갈등과 화해의 요소를 평범하게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온 것 같지만 그것을 매만져나간 감독 미시카 유키코의 솜씨는 대단하다. 이야기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관객들에게 이입되도록 하고 있으니, 많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우리의 일상은. 그리고 관계들의 형태는.

<친애하는 우리 아이>는 바로 그 지점을 가만히 짚어보고 있다. 슬프다, 즐겁다, 연민이 생긴다, 속상하다 등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관계의 변화와 핵심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영화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친애하는’ ‘우리’ ‘아이’. 가족은 어른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는 분명 ‘아이’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안고서. 그리고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인 것이다. 나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이므로 내 마음대로 해서도, 그럴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다름 아닌 ‘친애하는’ 우리 아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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