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1.16 금 18:49

‘유전무죄’ 사슬 이번엔 끊어야

수사대상이 된 전 대법원장과 30년 전 탈주범...여야 4당 '특별재판부' 설치 합의 주목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l승인2018.10.25 18:25:0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래희망이 시인이었던 그는 가난했다. 몇 차례 절도행각을 벌이다 결국 철창행 신세가 됐다. 상습절도범과 무단 가택 침입 등의 잡범에게는 과도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무려 17년형이 떨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보호감호란 명목으로 잡아두는 형도 포함됐지만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5백여만 원어치의 절도 몇 번한 것에 비해 그는 너무 과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 씨는 무려 72억 원을 횡령하고도 처벌을 받는 둥 마는 둥 한 결과는 법의 형평성에 더욱 불만을 갖게 했다.

30년 전 10월의 어느 가을,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25명 가운데 12명이 탈출하는데 그도 끼어있었다. 탈주범들의 서울 잠입 소식은 즉각 알려져 국민은 공포에 떨어야했다. 세상에 이름조차 없던 지강헌은 탈주극을 벌이고서야 유명인이 됐다.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한 가정에 잠입해서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지강헌은 맏형 격이었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 됐다. 탈옥수 지강헌이 호송교도관의 총을 빼앗아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법을 한탄하며 세상을 원망했다. 35살 짧은 삶을 잠깐의 자유와 맞바꿨다. 그의 죽음과 함께 회자되기 시작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은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서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로 진화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전관예우’라는 부끄러운 전통은 그대로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여전하고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는 꼴찌 수준이다. 3권 분립의 한 기둥을 형성하는 전직 대법원장이 수사 대상이 됐고, 대법관과 공범 수준이라는 검찰의 수사 내용은 기가 찰 노릇이다.

▲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특별재판부 설치 촉구’ 4당 원내대표 공동 기자회견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관영 바른미래당,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장병완 민주평화당,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뉴시스

결국에는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 원내대표가 25일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사건을 전담할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사법정의가 유린당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며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를 공정히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4당이 힘을 합쳤지만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특별재판부 설치는 불가능하다. 사법부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데, 자유한국당이 억지논리를 내세워 계속 반대하면 다시 법은 조롱거리,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법농단의 당사자가 스스로 재판의 주체가 되는 것은 ‘이해상충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공정성이 담보될 수 없어 그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 그런 조짐이 이미 수사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개 정당 원내대표들은 “사법농단 수사 진행경과를 보면 법원이 과연 수사에 협조하고 사법농단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90%에 육박하는 일반 형사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과 비교해 “사법농단 사건 압수수색 영장은 단 한 건도 온전히 발부된 적이 없다”며 “법원 일각의 반발로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검사 등 고위공직자, 국회의원들의 비리나 불법을 수사할 수 있는 ‘공직자비리특별수사처’ 관련법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특별재판부 설치에 팔을 걷어붙인 정치권의 움직임에 맞선 자유한국당의 몽니는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민주주의사회를 법치사회라고 했다. 법이 바로 서지 못해 법을 원망하며 목숨까지 바치는 일이 빈번하고 개선이 없는 곳을 불행한 사회라고 부른다. 법으로 먹고사는 판사, 대법관들이 연루된 중대한 사안을 독립적인 특별재판부가 아닌 연루자들에게 맡기는 일은 부당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적어도 30년 전보다는 한발 나아가야 하지 않나. 국회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류지열l편집인: 이은미l청소년보호책임자: 류지열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류지열
Copyright © 2018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