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에 인정한 계엄군 성폭행, 국방부는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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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엄마의 검은 침묵' 5·18 성폭행 피해자 증언 담아..."군복 훔쳐 입은 민간인 아니냐"는 국방부 관계자

▲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6월 8일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출범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로 이뤄진 공동조사단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성폭행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정부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피해자들과 관계자들 모두 쉬쉬해온 이 문제는 올초 ‘미투운동’에 힘입어 긴 침묵을 깰 수 있었다. 김미영 PD가 연출한 GFN 광주영어방송 5·18 38주년 특집다큐멘터리 <38년, 엄마의 검은 침묵>은 피해자의 입을 통해 성폭행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편집자 주>

[PD저널= 김미영 GFN 광주영어방송 PD] 2002년 당시, 광주의 화두는 ‘인권을 어떻게 도시 브랜드화 하느냐’였고, 광주영어방송은 그 답을 해외사례에서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세계 최초로 인권도시 선언을 했던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서 피로 얼룩진 역사의 한 페이지,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Dirty War)'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맞닥뜨린 흑백 사진들은 흡사 광주의 5월 민주화운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으며, 80년대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행해진 군부의 탄압은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시민들이 갇혀 있었던 비밀 수용소를 방문하고,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면서 인권도시의 형성과정보다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서슬퍼런 역사의 기록들이 더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혁명 당시 군부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를 낳자마자 실종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시민단체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들 중에는 수용소에 끌려갈 당시 임신 상태였던 여성들도 있었지만, 수용소 내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출산까지 한 뒤, 헬리콥터에 실려 바다 한 가운데 버려진 여성들도 있었다. 다행이 이런 비극 속에서 살아남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때문에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었던 여성학자, 여성변호사, 여성심리학자 등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인터뷰를 이끌어 갔고,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길 수 있었다.

실명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밝힌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명을 사용했다. 그들의 기록은 자신들이 성폭행을 당했던 방의 구조까지 상세하게 기억해서 그릴 정도로 사실적이었으며, 개인적인 보상이나 원한보다는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길 하는 바람에서 기록을 남긴다고 했다.

이런 설명을 듣는 내내 한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됐다. 80년대, 아르헨티나와 광주는 비슷한 민중혁명으로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실종되고 희생됐다는 공통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광주에서는 그 동안 한 차례도 민주화운동 기간에 자행된 성폭행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나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직도 당시를 겪어냈던 시민들은 군인이나 경찰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고,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군부에 의한 성폭행을 화두로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취재 이후 인권도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송 되었지만, 군부에 의한 성폭행 관련 취재 파일은 당시 제작된 다큐멘터리에선 거론되지 못했다. 그 후 몇 년이 시간이 흘러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 자행된 성폭행에 대한 취재를 할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관련 기관에 몸담고 있는 여성대표들 조차도 그런 일은 없었으며, 혹여 있었다 해도 50대, 60대인 여성들이 자신들이 당한 일을 밝히긴 어렵다고들 했다. 어떤 분은 '지금은 말 못하지만, 죽기 전엔 꼭 얘기 하겠다'며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게 됐다. 광주에서 자행된 성폭행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로 국한되진 않았다.

고문 당시 자행된 군부의 성폭행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군부에 의한 집단 성폭행 진술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와 그녀들의 진술이 담긴 기록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이 겪은 아픈 이야기를 눈물과 함께 쏟아내는 어머님들을 만날 수 있었고, 2018년 5월 18일 다큐멘터리 <38년, 엄마의 검은 침묵>이 전파를 타게 됐다.

여러 분들의 도움 덕분에 상도 받고, 방송인으로서 나름 큰 일을 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얼마 후 진상조사단이 발족하면서, 우리는 오랜 시간 취재해 온 프로그램이 조금이나마 사회적으로 기여 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사회에 또다른 화두를 던지면서 큰 숙제 하나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진상조사단이 마련한 자리에 참석해 그 간에 우리가 취재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국방부 관계자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해왔다. "성폭행을 했던 군인을 실제 군인이라고 어떻게 증명하나요?", "군복을 훔쳐 입은 민간인이라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그리고 생각했다. 언제쯤 우리가 기록한 진실이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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