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KBS 사장 선임, '영포빌딩 문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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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BS 사장 선임, '영포빌딩 문건' 그대로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정연주 전 사장 해임 전후 작성된 청와대 문건 공개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8.11.08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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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실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주간 동향분석 및 전망’ 문건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2008년 8월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을 전후로 청와대가 KBS 신임 사장 선임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이른바 '영포빌딩 문건'이 공개됐다.

8일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진미위)는 "2008년 9월 17일 시행된 인사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2008년 청와대 정무수석실, 대변인실, 국정조사 상황실 등에서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진미위가 공개한 문건은 2008년 8월 18일과 25일 대통령실 정무수석실이 작성해 보고한 것이다.

먼저 8월 18일 보고된 '주간 동향분석 및 전망' 문건은 정연주 사장 해임 이후 "가능하다면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신속히 후임 인사를 단행함으로서 관심을 분산시켜야 할 것"이라면서 "KBS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방송 전문가로 조직 장악력이 있는 비 정파적 인사를 물색"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서는 또 김인규 전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를 '친 정권 이미지가 강한 인사'로 분류하면서 김 전 특보를 KBS 사장으로 임명할 경우 강한 반발이 이어지며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정연주 사장의 해임 이후 청와대의 KBS 사장 선임 개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2008년 8월 22일과 23일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이 김은구 전 KBS 이사 등 KBS 전현직 임원 4명과 만나 새 사장 인선문제를 논의했다"며 "사실상 KBS 사장후보들을 면접하는 자리였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진미위는 "모임 이틀 후인 2008월 8월 19일 김인규 씨가 사장 응모 포기 성명을 발표했고 8월 20일 KBS 사장 후보자 접수가 마감됐다"며 "후보자 접수 이틀 뒤인 8월 22일 보도로 '8.17 대책회의'가 폭로되면서 유력 후보로 꼽히던 김은구 씨가 낙마했다"고 설명했다.

진미위가 공개한 또 다른 문건은 <경향신문> 보도에 대한 KBS 안팎의 반응과 여당·청와대의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

2008년 8월 25일 보고된 '주간 정국분석 및 전망' 문건은 "경과에 잡음은 상당수 있었지만 일단 새 사장이 취임하고 나면 KBS 사태는 일단락되는 셈"이라며 "이미 최근 KBS의 보도 태도를 보면 정연주 사퇴 이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봤다. 문건이 보고된 이튿날인 8월 26일 KBS 이사회는 이병순 전 KBS 뉴미디어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진미위는 "두 문건의 내용으로 볼 때 사장 후보자 김은구 후보 내정→김인규 사장 응모 포기→특정인 사장 선임 과정을 청와대가 기획했고, 실제로 그대로 실행됐음이 확인된다"며 "특히 김인규 씨가 갑작스럽게 사장 응모 포기 성명을 발표한 이유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고, 본인은 '혼란한 KBS 사태의 장기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응모 포기를 결심'했다고 주장했으나 사전에 청와대의 지시 내지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했다.

진미위의 조사에 따르면 이병순 전 사장 취임 이후 단행된 인사가 상당 부분 '보복 인사'였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하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하 '사원행동') 가입자 명단과 9월 17일 인사발령자 95명의 명단을 대조해 본 결과, 95명 중 52명(54.7%)이 '사원행동'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사발령에 따라 김용진 탐사보도팀장(현 <뉴스타파> 대표)이 부산총국으로 발령나는 등 탐사보도팀 기자 6명이 타 부서로 떠났으며, '사원행동'을 이끌었던 양승동 PD(현 KBS 사장) 등은 비제작부서로 전출됐다. 정연주 사장 퇴진 집회에서 당직자의 허락을 얻어 전기선을 끌어준 기술직종 사원이 경기도의 전파 송중계소로 발령나는 사례도 있었다.

진미위는 "'9.17 인사' 이후 KBS에서는 탐사보도팀이 해체되고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 프로그램이 폐지됐으며 윤도현, 정관용, 진중권, 유창선 등 MC들이 대거 하차하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빚어졌다"며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 편성을 강행하는가 하면 사원행동 지도부에 대한 파면과 해임도 잇따랐다"고 지적했다.

다만 진미위는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른 추가 조치는 권고하지 않았다. 진미위 한 관계자는 "'9.17 인사'를 인사권 남용으로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이 사유로 징계는 쉽지 않다. 설사 징계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징계시효가 지난 사안"이라며 "다만 진상을 규명하고 기록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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