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가수 없는 음악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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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가수 없는 음악방송
음악방송은 어쩌다 아이돌 전용무대가 됐나
  • 허항 MBC PD
  • 승인 2018.11.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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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파 음악방송 프로그램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PD저널=허항 MBC PD] “이 트로피는 저희가 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상파 3사 음악방송 엔딩에서 익숙히 듣는 MC멘트다. 이는 1위 트로피를 받을 가수가 그 자리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고 이런 상황은 연출자는 물론 시청자가 느끼기에도 매우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지상파 위클리 음악프로그램의 순위는 해당 프로그램과 제휴를 맺는 음원사이트에서 음원성적이 높은 비율로 반영된다. 그러다보니 각종 음원사이트의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가수들이 음악프로그램 1위 후보로 올라서는 경우가 많다. 최근 <쇼! 음악중심>과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의 1위 후보 라인업에서는 폴킴, 아이유, 양다일 등 음원 순위 최상위권에 자리한 가수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음원강자들의 얼굴은 화면에서 좀처럼 보기 어렵다. 최근엔 KBS <뮤직뱅크>에 양다일씨가 한 번 출연했던 것이 유일했다.

그렇게, 음악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가수가 1위 후보에 오르면 현장 분위기는 다소 애매해진다. 1위가 누군지 발표하기까지 보여주는 실시간 리액션 화면은 해당가수의 재킷 사진으로 대체되고, 그 가수가 1위로 확정되면 엔딩무대에 선 출연 가수들이 애매한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박수를 친다. 마지막으로 그의 음원이 역시 허공에 흐르면서 텔롭(자막)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화면이 페이드아웃 된다. 전달된다는 트로피는 언젠가 가수 본인이 아닌 기획사 관계자가 프로그램 회의실에서 사무적으로 픽업해갈 것이다.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음원강자, 혹은 믿고 듣는 뮤지션이 된 후에는 음악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패턴 말이다. <쇼! 음악중심> 연출을 맡고 분위기 파악(?)이 잘 안됐던 시기에는, 1위 후보에 오른 가수 측에 호기롭게 섭외 요청 전화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저희 가수는 아이돌 나오는 프로그램에는 잘 안 나가요. 어색해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만 나가는 걸로 정리가 됐어요.”

그렇게 하도 여러 번 거절을 당하다보니, 섭외를 할 에너지를 열심히 출연해주는 가수들에게 쏟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지만, 마음 한편이 늘 아쉬운 것은 숨길 수가 없다. 왜 공중파 ‘음악’프로그램들이 ‘음악인’들이 나오기를 꺼리는 프로그램이 되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어색하다 느끼게 만들고 있는 걸까.

어린 시절, 그리고 학창 시절 <가요톱텐>이나 <음악캠프>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수들을 보았던 것 같다. 신인 댄스그룹이 오프닝 무대를 열고 조용필 가왕이 엔딩을 장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위 후보 발표 자리에 빈자리가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신승훈이냐 김건모냐, 이효리냐 이수영이냐, TV를 보는 모든 시청자가 가슴을 졸이며 자기 가수를 응원했던 것 같다.

내가 <쇼! 음악중심> 조연출로 일했던 10여년 전만 해도 <쇼! 음악중심>에선 지금보다 더 다양한 연령대와 장르의 가수들이 다채로운 무대를 펼쳤다. 다이나믹 듀오와 같은 힙합스타들과 노브레인, 크라잉넛 같은 언더출신 밴드들이 훌륭한 라이브로 좌중을 뒤집어 놓았다. 트로트 가수들과 정통 알앤비 가수들이 매주 한두팀씩은 <쇼!음악중심> 무대에 섰고,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었다. 하지만 작금의 음악방송 편성시간 70여분은 거의 아이돌 가수들로 채워지고, 아주 가끔씩 중견 발라드 가수들이나 음원활동 위주의 가수들, 혹은 언더 밴드들이 출연하기도 하지만, ‘내가 여기 서도 되나’를 되뇌는 듯한 멋쩍은 표정들이 읽히곤 한다.

아무도 <쇼! 음악중심> <뮤직뱅크>, <인기가요>를 “아이돌만 나오는 프로그램”이라고 규정한 적은 없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에도 <쇼! 음악중심>을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신선하고 다양한 무대를 통해 시청자와 함께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음원강자'는 물론이고 트로트 가수, '7080 가수', '언더신' 가수들까지도 얼마든지 열려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방송=아이돌만 나와야하는 방송’이라는 근원 모를 공식 같은 것이 생기면서 아이돌이 아닌 대다수 음악인과 음악방송의 관계는 점점 더 데면데면해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아이돌 팬덤을 제외한 대다수의 시청자들 역시 음악방송에 마음을 닫게 되고, 음악방송은 다시 아이돌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다시 비아이돌 가수들은 음악방송을 멀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돌의 음악도 BTS라는 아이콘을 낳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이지만, 아이돌 음악으로 음악방송을 꾸미기엔 한국 음악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지 않은가.

이어폰으로 듣고 감동받은 젊은 음원강자들의 음악을 <쇼! 음악중심>의 세트, 조명과 함께 라이브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힙합신의 스타들이 Mnet<쇼미더머니>뿐 아니라 <쇼! 음악중심> 무대에서도 거침없는 뜀박질을 했으면 좋겠다.

나아가 최근 음반을 낸 ‘이문세님’과 신인 아이돌이 함께 무대에 서고, 50주년 콘서트로 전국을 감동시키고 계신 '가왕 조용필님’이 엔딩을 장식하는 TV음악방송을 다시 보는 것이 허황된 희망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일단 지레 포기했던 섭외전화부터 다시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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