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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앙진호 회장 폭행 피해자들,,, 좀 더 일찍 “NO”라고 했다면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l승인2018.11.15 17: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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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방법을 받아들일 때 그 결과는 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노’라고 말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희생이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픽사베이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몇 년 전 어느 대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대학원 실험실에서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A군은 선배 B군의 막말과 업신여김이 못마땅했으나 참았다. 사건이 나던 날도 내성적인 A군은 회식 자리에서 B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여러 후배들 보는 앞에서 당하는 모욕과 창피함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A군의 분노는 이 자리에서 마침내 폭발했다. 조용히 일어나 식당 주방으로 들어간 그의 손에는 주방용 식칼이 들려있었다. 평소 저항 한 번 안하던 양순했던 후배가 칼을 들고 나타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B군, 그의 가슴에 울분에 찬 후배의 칼이 세차게 꽂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었지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도 가해자도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었다. 그 슬픔과 비극은 남은 가족들의 몫이었다. 늦둥이가 대학원 다닌다며 자랑했던 A군의 어머니에게 아들의 구속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한 번의 실수치고는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학교도 교수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평소 선배 B군의 업신여김과 학대에 대해 왜 ‘노’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왜 학교나 교수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뒤늦은 후회와 탄식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 지난 9월 5일 숙명여고에서 경찰이 이 학교 교무부장이 2학년인 쌍둥이 딸 2명에게 시험 문제를 유출해 성적을 올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자료를 가지고 나가고 있다. ⓒ뉴시스

숙명여고 시험 답안 유출 사건 수사 결과도 빗나간 자식 사랑의 재확인이었다. 경찰은 쌍둥이 자매를 공범으로 판단,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달았다고 한다. 학사비리의 수혜자인 미성년자가 기소된 사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그렇게까지 의견을 제시한 것은 수사과정에서 직면한 여고생의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물증을 들이밀어도 부인하는 쌍둥이 자매의 태도는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지시 때문은 아니었을까.

쌍둥이 자매는 어린 나이에 수사관 앞에 앉아 감당하기 힘든 경험을 했다. 이런 악몽은 평생 인생을 따라다닐 것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경험이다. 쌍둥이 자매는 이미 친구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더는 괴물이 되지 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어리석은 부모는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1등으로, 최고로 만들려고 한다.

고등학생 정도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다. 부모가 ‘너를 위한 길’이라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부모의 말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가져올 여파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전교 100여등 실력으로 죽었다 깨도 인서울 대학에 가기 힘들다’며 아버지가 비법을 제시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부정한 방법을 받아들일 때 그 결과는 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인생 전부를 너무 어린 나이에 희생하게 될 지도 모른다. ‘노’라고 말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희생이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갑질의 끝판왕’으로 불린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으로부터 폭행과 모욕을 당한 피해자들은 그의 협박과 보복이 두려워 쉬쉬했다. 물론 수사기관에 고소했지만 검찰이나 경찰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하는 등 피해자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오죽하면 폭행당한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섬으로 들어가 숨어살고 있었겠나.

양 회장 폭행 현장에는 직원들이 다수 있었지만 누구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불법행동에 대한 판단은 법의 몫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혀를 찬다. 직원들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양 회장의 ‘무법질주’는 1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고 대마초를 피우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불법은 일상이 됐다. 직원들 또한 침묵의 동조자이자 불법의 협조자들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내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용기다.

서지현 검사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범죄를 세상에 알렸다.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법익조차 지키지 못해 언론에 호소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서 검사가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용기와 함께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누군가는 그를 비난했고 심지어 자신이 몸담은 검찰조직마저도 보호는커녕 ‘배신자’취급을 했다.

현직검사가 검찰이라는 거대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용기에 시민들은 응원을 보냈다. 이어진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운동’은 세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부당한 일, 불법을 보면서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내 가족이나 내가 몸담은 조직이 관여됐을 때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유사사건이나 역사를 보면, 그래도 ‘노’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낫다는 결론이다. 또 한 번 침묵하면 내 인생은 물론 내 가족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노’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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