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문외한'의 경매회사 갤러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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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문외한'의 경매회사 갤러리 방문기
경매 시작가 40억원인 작품부터 제프 쿤스 작품까지 한자리에
  • 이은미 KBS PD
  • 승인 2018.11.16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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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은미 KBS PD(<진품명품> 연출)] 예상하지 못했다. 미팅 장소가 압구정동인 줄만 알았지, 약속 장소가 경매회사의 건물인 줄 몰랐다. 만나기로 약속한 <진품명품> 자문위원을 기다리며, 스산한 느낌의 압구정 골목을 훑어봤다. 임대인을 구한다는 플랜카드를 써붙인 빈 건물들을 보니, 모 연예인이 ‘쇠락한 압구정동’이라고 표현했던 게 기억이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싸늘해지는 날씨와 나의 우울함이 겹쳐, 왠지 오늘의 미팅은 축 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자문위원을 만나면 물어봐야 할 것과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서 정리할 것들을 생각하며 서 있는데, 자문위원이 안으로 들어오겠냐고 제안했다. 건물 벽에는 다음날 열릴 미술품 경매 포스터가 붙어있어 나는 으레 사무실로 가자는 얘기인줄 알았다.

“40억 짜리 작품 한 번 보실래요?”하고 자문위원이 첫인사를 던졌다. 과연 40억 원의 물건이 뭔지 궁금해서 자문위원을 따라갔다. 건물 내부에는 갤러리가 꽤 넓게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마치 미술관처럼. 그 분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며, 벽의 그림을 두 눈으로 빠르게 훑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야요이 쿠사마, 제프 쿤스, 백남준 등의 작품부터 내가 좋아하는 이왈종 화백의 그림까지 눈에 들어왔다.

이게 웬 노다지란 말인가. 여러 전시회를 다녀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회색빛의 늦가을 같던 나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부터 최근 비(非)인기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까지.

나를 흥분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도심의 한 빌딩에서 본 그림과 같은 화풍의 작품을 압구정동 경매 전시관에서 다시 만났고, 드디어 작가의 이름까지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김환기·김창열 화백의 작품이었다. 이 십년 전 중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느낌이랄까.

▲ 장욱진 화백의 <얼굴>(1957) ⓒ장욱진미술문화재단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장욱진 화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자문위원이 40억 원짜리 작품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면서 “여기 장욱진 화가의 작품도 있어요”라고 알려줬다. '장욱진 화가'의 이름도 그림도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한번 보고 난 뒤 그의 그림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동화같이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이 계속 보고 싶었고, 작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약 30년 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화가가 이런 색을 사용하다니, 깜짝 놀랐다. 아쉽게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은 전시회는 현재 없고, 양주의 장욱진미술관까지 가야한다. 만약 이 경매 전시장에 들르지 않았다면, 나는 장욱진이라는 화가를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오늘 약속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그림이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미술품 경매와 경매 전시장은 나에게 생소한 분야다. 월급쟁이에게 그림을 구매한다는 것은 사치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집에 그림을 걸어 놓을 공간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그림을 큰 미술관의 전시회가 아닌 소규모 갤러리에서 본다는 것은 왠지 미술 구매를 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관람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 내가 미술 경매 장소에서 여러 그림을 만나는 호사를 누리며 신나하고 있다니, 스스로도 줏대 없는 인간이다 싶다.

하긴 그러고 보니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점차 그림을 좋아하게 된 데는 작품을 너무 진지하게 보지 않는 나름의 감상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째는 ‘방에 걸어 놓고 보고 싶은 작품 골라보기’, 그 다음은 ‘방에 걸기는 좀 그렇지만 느낌을 주는 작품 골라 보기’가 나의 그림 보는 안목이라 하면, 약간 속물적이긴 하지만 허세는 없는 감상법이지 않을까.

이 날, 내가 구매할 수 있는 작품은 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예술이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소장해도 질투심이 생기진 않나보다. 그저 다음날 있을 경매에서 낙찰 받은 누군가가 혼자 방에 걸어두고 보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걸어 두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잠깐이라도 작품을 기증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앞으로 소규모 갤러리숍이든, 경매용 전시든 용기 내어 들어가 볼 생각이다. 혹시나 또 내 마음을 흔드는 미술작품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 이 경매에 등장한 시작 가격이 40억 원이라는 작품은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19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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