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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 달라진 풍경

깐깐한 출경 심사에 진땀...새로운 보건의료 시스템 인상적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l승인2018.11.23 17: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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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만에 다시 찾은 평양 거리의 모습. ⓒ오기현 PD

[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SBS PD)] “이 사진 지우십시오!” 5‧27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연출한 사진이 문제가 됐다. 도보다리 회담 당시 남북의 정상을 재현한 인물 형상을 좌우로 두고 그 중간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다. 1000장이 넘는 휴대폰 보관 사진에 그 사진이 들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설마 핸드폰 사진을 일일이 다 검사할 줄은 몰랐다. 자칫 입경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두 정상의 역사적인 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수뇌 분을 만화처럼 형상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두말없이 그들의 요구를 따라 주는 것이 최선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듯이 ... 그런데 웬걸, 사진 삭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지워도 또 사진이 나타났다. 조바심이 났다. 일부러 시빗거리 만들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취재하다 보면 충돌할 일이 다반사일 텐데, 공연한 일로 처음부터 긴장관계가 만들게 됐다.

“선생님, 그럼 이 손전화는 여기 공항에 놔뒀다가 돌아갈 때 찾아가십시오.”

헉! 내 신상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휴대폰을 맡기라니! 필사적으로 삭제 방법을 찾았다. 저장 공간이 꽉 차서 그런 건가? 설정에 있는 모든 기능을 다 동원했지만, 마술 걸린 휴대폰처럼 귀신같이 다시 사진이 되살아났다. 출경장을 먼저 빠져 나간 일행 한 분이 다시 들어와 겨우 삭제를 도와줬다.

이어진 노트북 검사.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혹시 예상치 않은 문서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문득 지난봄에 탈북자를 인터뷰한 내용이 걱정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이고 노트북이고 아예 놔두고 올 건데 하는 후회가 됐다. 다행히 문서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함께 방북한 단체 입경이 20여분이나 늦어졌다. 앞으로 방북하는 분들은 휴대폰과 노트북의 사진, 문서는 꼭 미리 옮겨 놓고 가길 권한다.

인트라넷망 이용한 북한의 진료시스템 

5년만의 방북이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이사 자격으로 의료인들, 활동가들과 함께 방북했다. 미래의 통일세대를 위한 보건의료 협력이 목적이었다. 북에서는 ‘지원’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북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에서 남측의 인도지원단체를 담당하는 부서 이름도 ‘협력부’다. 남북 사이 최초의 인도적 지원이 1985년 남한 수해 당시에 북한측에서 물자를 보내온 것이라는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원보다는 상호협력이라는 표현이 합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단체의 숙소는 고려호텔이었다. ‘다행’이라고 하는 이유는 대동강의 섬 가운데 있는 양각도 호텔이나 한적한 숲 속의 보통강려관에 비해 고려호텔은 평양의 번화가인 창전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낮 시간에도 비교적 많은 행인이 호텔 앞을 지나다닌다. 평양역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호텔 창문으로 길 건너편 아파트의 베란다가 훤히 바라다 보인다. 평양의 분위기를 상세히 느껴보기 위해선 고려호텔이 최선의 장소다.

우리 일행 10명은 첫날 저녁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비교적 빡빡한 3박 4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설립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이른바 ‘주체적 보건정책’에 의해 최근 건설된 옥류아동병원, 류경안과종합병원, 류경치과병원 등을 방문했다. 그 밖에 평양교외의 협동농장 한 곳도 방문했다.

북측의 모든 변화가 그렇듯, 남북관계가 단절된 10년 전에 비해 보건위생분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인트라넷망을 이용한 ‘먼거리의료봉사체계(원격의료시스템)’는 통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특성에 맞는 진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으로 보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됐다는 옥류아동병원의 벽면에 어린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수 백 장의 그림동화를 붙인 게 인상적이었다. 안과에서 안경을 제작하고, 치과병원에서 치과재료를 제작하는 ‘원스톱 시스템’은 상업적 이해관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입원할 때는 엄마도 환자복을 입고 같이 입원하는 모습도 색달랐다.

원하는 모든 환자가 이런 훌륭한 혜택을 받는지, 실제 모든 진료를 무상으로 진행하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대북제재라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세계수준의 보건지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전문가들의 열정만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 다양한 종류의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대. ⓒ오기현 SBS PD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998년 북한을 첫 방문한 이래로 20년이 지났다. 북한도 많이 달라졌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변화가 눈에 띈다. 남한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택시가 많아졌고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행인들의 옷차림이 화려해졌고, 거의 모든 행인들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상점에는 매우 다양한 소비재들이 진열되고 있었다. 과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과자 진열대에 엄청난 종류의 과자들이 진열된 것을 보고 무척 흐뭇했다. 20년 전 동평양백화점을 갔을 때 가공식품은 ‘빵’, ‘콩사탕’, ‘맛있는 과자(비스킷 상표 이름)’ 세 가지뿐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인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구호가 말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직접 실현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10여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약사 선생님은 이런 평양의 변화를 오히려 마뜩지 않게 생각했다. 발전에 매몰되어 사회주의의 장점인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길거리를 걷는 주민들이든, 식당이나 가게 종업원이든 평양사람 전체가 활기에 차 있었다. 일정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쳇말로 ‘때깔’이 좋아졌다. 북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정부분 감에 의존해서 말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평양행 고려항공, 조선중앙TV, 옥류관랭면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의 모든 모니터에는 늘 같은 영상이 반복되어 방영됐다.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문수물놀이장, 능라곱등어관, 미식령스키장’ 등 최근 북한이 개발한 시설들이다. 우리 TV에도 자주 소개된 곳이다.

결국 눈에 띄는 몇몇 장소 외에 새로운 것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눈에 띄는 선전물에 가용 자원을 과도하게 투자해 자원 분배의 왜곡을 초래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보면 일정한 지역에 대한 자원의 집중투자가 효율적일 수도 있다. 중국의 ‘선부론’이 그렇다. 일부가 부유해지면 이것을 모델로 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동쪽 특구와 해안지역을 먼저 개발한 뒤, 서부와 내륙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재난 상태를 극복하고 막 이륙을 시작한 북한은 대북제재라는 위기에 봉착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을 모든 곳에 골고루 나눠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지만, 한 곳에 집중하면 효과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대북제재 속에서 이룩한 평양의 발전모델이 지방으로 점차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해봤다.

‘저수지론’으로 본 북한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었다. 동행한 한양대 의과대학 신영전 교수는 ‘저수지론’으로 북한을 분석했다. 북한을 비슷한 국민 소득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SARS)가 유행하면 중앙에서 내린 포고문이 바로 다음날 함경도 오지의 말단 행정 단위까지 예방 포스터가 나붙는다고 한다. 교육 수준이 높아 주민들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높다. 또한 비록 완벽히 시행은 안 되고 있지만, 북한의 노령연금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비되어 있다. 북한의 의료체계는 잘 건설된 저수지와 같아서, 대북제재가 풀려 경제가 돌아가기만 하면 물은 언제든지 채워질 것이라는 것이 저수지론이다.

강화된 통제시스템

평양만 10번 이상 취재를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촬영에 대한 제약이 많았던 적은 없다. 평양거리 촬영은 물론이고 주체사상탑 위에서도 촬영 제한을 받았다. 이번에 우리를 초청한 부서가 언론 담당이 아닌 민간협력단체 담당이라서 생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순안비행장의 출경장에서도 다시 영상을 확인하고 삭제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고 행정기능이 정비되면서 통제시스템도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산수갑산의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보고하라’는 지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성취와 자신감이 가져온 파생효과라고 볼 수도 있다.

미래의 우리 어린이들은 적대와 갈등의 해묵은 고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남북의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묘약을 찾기 위한 3박 4일간의 뜻깊은 방북이었다. 다음번 방북은 지난해 7월 한국PD연합회가 북측에 제안했던 ‘남측 방송사 PD 50명 평양 방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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