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이미나 기자] 올무에 걸려 한쪽 팔을 잃은 반달가슴곰, 일명 '올무곰'이 겨울잠에서 깨어 동면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굴 속에서 새끼 곰 두 마리가 얼굴을 쏙 내민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던 올무곰이 기적처럼 겨울을 버틴 것으로도 모자라 어엿한 어미가 된 것이다. MBC 창사특집 UHD 다큐멘터리 <곰>의 한 장면이다.
'눈물 시리즈' 등 명품 자연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던 MBC가 이번엔 '곰'에 주목했다.
지난 2년간 제작진은 한국 지리산부터 북극, 러시아 캄차카, 중국 쓰촨 등 전 세계 12개 지역을 누비며 불곰, 북극곰, 판다 등 다양한 곰들의 흔적을 쫓았다.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에 이어 다시 자연 다큐멘터리로 시청자를 찾게 된 김진만 PD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MBC 자연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 현장에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제작진끼리) 의논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곰> 제작 과정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인간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야 했던 만큼 곰이 사람인 제작진을 의식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중국 쓰촨에선 아예 판다의 분뇨를 묻힌 판다 형상의 털옷을 입고 인간의 냄새를 지운 뒤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결과 총 5,000여 시간, 300TB에 달하는 촬영 분량이 쌓였다. MBC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장 촬영 기록이다. 제작비로는 15억원이 투입됐다.
두 달간 올무곰의 거처 앞에 베이스캠프를 쳤다는 송관섭 PD는 "처음 보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그제야 얼굴을 한 번 보여주고, 다시 보름 후에 새끼 얼굴을 한 번 보여줬다. 그 새끼들이 땅에 내려오는 걸 보는 것까지 또 한 달이 걸렸다"며 "처음 올무곰을 봤을 때 딸이 태어났을 때만큼 기뻤다"고 회상했다.
<곰>은 다음달 3일 방영되는 프롤로그 '곰의 세상으로'를 시작으로 야생의 곰의 생태계를 다룬 1부 '곰의 땅', 인간의 욕심에 고통 받고 사라져가는 곰들의 현실이 담긴 2부 '왕의 몰락', 인간과 곰의 공존을 모색한 3부 '공존의 꿈',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총 5편으로 구성됐다.
제작진은 이를 통해 대자연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곰을 통해 인류의 역사, 그리고 지구의 기후 변화 등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계획이다.
김진만 PD는 "촬영 과정도 어렵고, 다른 콘텐츠와의 경쟁도 심해지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에서 요즘 다큐멘터리 제작에 주저하는 것 같다"며 "(공익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다큐멘터리가 가야 할 길이고, 당연히 공영방송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