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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가내수공업으로 찍어낸 제주어 드라마

KBS제주 ‘어멍의 바당’, 막장 요소 없는 밋밋한 드라마지만...사라져가는 해녀문화 제주어 조명 의미 양천호 KBS제주 PDl승인2018.12.04 15: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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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제주가 제작한 제주어 드라마 <어멍의 바당> 촬영 현장. ⓒ양천호 PD

[PD저널=양천호 KBS제주 PD] 지난 주말 KBS에서 특이한 드라마 한 편이 방송됐다. 배우도 처음 보는 사람이거니와 우리말 대사인데 자막이 들어간 것도 이상하다.

“무싱걸 ᄀᆞ라줄거라?”(무슨 말을 해줄까). “언치냑 꿈에 문친떡 먹어져라마는 오널 빗이나 큰 거 테젠 햄신가”(어제 꿈에 시루떡을 먹었는데 오늘 전복이나 큰 거 딸건가)와 같은 도통 알아듣기 힘든 100% 하드코어 제주어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의 정체는 제주의 연극배우들이 요새 젊은 제주 사람들도 한 번에 잘 알아듣기 힘든 제주어로 연기한 <어멍의 바당>이다.

<어멍의 바당>은 지난 5월부터 KBS제주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8시부터 25분씩 방송한 미니시리즈 드라마다. 협재해수욕장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섬 비양도를 배경으로 해녀 3대와 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 풍광과 함께 섬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정겹게 풀어냈다. 지역방송사가 자체제작하는 드라마도 드문데, 미니시리즈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2017년 KBS가 제작한 드라마는 23편,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까지 포함하면 모두 109편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어멍의 바당>처럼 오롯이 지역이 주인공이 된 드라마가 있었을까? <어멍의 바당>은 지역의 작가가 대본을 쓰고 지역의 연기자들이 연기를 한다. 드라마 예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제작비와 인력 속에서 제작한 드라마다.

처음 드라마를 기획한 건 작년 봄. <보물섬>이라는 로컬 교양프로그램에서 6~7년 동안 제주 배우들이 사투리로 제주인의 생활과 역사, 문화, 인물 등을 소개해 왔는데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회의를 거듭하던 중 “이제 드라마타이즈나 재연이 아닌 우리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단편이 아닌 미니시리즈로 12부작이나 16부작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냈다.

처음엔 이 의견을 모두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주엔 매주 재연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2부작 단막 드라마와 다큐 드라마를 만들어 온 유능한 작가와 카메라감독, 배우들이 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한 번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일단 해녀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써보기로 했다. 촬영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섬 속의 섬 비양도를 배경으로 해 효율성을 높였다.

약 2달 후, 주간 프로그램을 겸하는 작가가 총 12부작 대본을 탈고했다. 출연할 수 있는 배우들이 정해져 있어 그들의 배역을 가상으로 정해놓고 대본을 만들었다. 몇 번의 회의를 통해 몇 몇의 캐릭터와 후반 에피소드들이 수정됐다. 2017년 9월 첫 방송을 목표로 대본 리딩과 촬영 준비가 이어졌고, 대망의 첫 비양도 로케이션 촬영이 시작됐다. 배우들은 총 12부작에 달하는 대본을 암기하고 해녀 물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8월 중순. 10여명의 배우들과 2명의 카메라감독, 2명의 PD, 오디오맨 3-4명이 두 개 조를 꾸려 약 1주일간 비양도에 머물며 촬영을 진행했다. 지역의 드라마 촬영은 본사의 그 것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출팀이나 소품, 의상팀은 따로 없어 촬영이 없는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스케줄을 챙기고 의상과 분장을 하고 소품용 음식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회차에 상관없이 뒤죽박죽 촬영이 진행돼 감정의 흐름을 연결시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한 번의 일출을 남기기 위해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던 카메라팀도 마찬가지다. 붐 마이크가 부족해 와이어리스 마이크 줄을 연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 별도의 조명팀과 동시녹음 팀 없이도 묵묵히 촬영에 임해준 촬영팀 역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섬 합숙은 무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열악한 숙소 여건 등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촬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일주일 정도의 합숙과 2~3일의 추가촬영을 통해 약 6회분 정도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나 9월 본방송을 준비하고 있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KBS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기약없는 파업.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이 이어지고 결국 올해 5월, 2년 만에 후반 촬영을 재개했다. 긴 시간을 인내해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올해 5월 역시 작년의 촬영처럼 비양도 촬영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작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촬영장 분위기는 즐거웠다. 비양도에서의 메인 촬영이 마무리되고 나머지 제주 곳곳의 장소들에서 4,5일 정도의 추가 촬영이 이뤄졌다.

두 명의 PD는 모두 각각 자신이 만드는 <보물섬>을 제작하면서 주말을 반납하고 제작을 이어갔다. 파업의 여파로 결국 2년여에 걸친 뜻하지 않은 대작(?)이 완성된 셈이다. 방식은 가내수공업이었지만 그 속에는 제주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 <어멍의 바당> 촬영팀과 제작진의 단체사진. ⓒ양천호 PD

본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비해 유명 배우도 화려한 볼거리도 등장하지 않는 <어멍의 바당>이 사실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듦새는 엉성해 보이고 막장의 스토리도 없는 밋밋한 시골밥상 같은 드라마일 수도 있다. 처음 제작기를 요청받았을 때 제주의 소소한 드라마를 자랑하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의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은 수신료를 받는다. 사라져가는 해녀문화와 제주어를 드라마로 좀 더 쉽게, 지역 시청자들과 고민하고 보존해가려 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좀 더 새로운 프로그램, 그동안 지역방송사가 하지 못했던 형식의 실험을 계속 해보고 싶다. 창의는 풍요가 아닌 결핍에서 싹트고 혁명은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지난 1, 2일 KBS 1TV를 통해 전국방송된 <어멍의 바당>은 오는 8일과 15일 오후 세시에 남은 두편을 방송할 예정이다. 


양천호 KBS제주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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