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편성 늘리라는데...속타는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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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계획 밑도는 콘텐츠·시설 투자...리마스터링한 HD 프로그램이 UHD 둔갑하기도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3일 열린 제55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앞서 지상파 UHD 콘텐츠 시연영상을 관람하며 박정훈 SBS 사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뉴시스

[PD저널=이미나 기자] 지난해 수도권 지역에서 본방송을 시작한 지상파 초고화질 UHD 방송을 둘러싸고 제작 현장에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UHD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15%까지 늘려야 하지만 경영 악화로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제작 여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9월 산별협약을 체결한 지상파 4사와 전국언론노조는 '지상파 의무 편성 유예'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요구했다가 비판 여론에 슬그머니 접었다. 

'세계 최초' UHD 방송을 내걸고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의 성과주의와 유료방송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서둘러 본방송을 시작한 방송사가 만든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방통위가 지상파에 부과한 UHD 의무편성 비율은 지난해 5%에서 시작해 2019년 15%, 2020년 25%, 2023년 50%까지 늘어난다. 내년부터는 3시간 이상 UHD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의무편성 비율을 맞출 수 있다. 방통위는 내년부터 지상파 재허가에 반영되는 방송평가에 'UHD 프로그램 편성 비율'도 평가할 계획이다.  

문제는 시설 투자 장비가 갖춰지지 않아 지상파 UHD 프로그램에는 기존 HD 프로그램보다 세 네 배의 시간이 더 걸리고 복잡한 절차가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지상파 PD A는 "UHD로 촬영한 원본 파일의 화질을 HD로 떨어뜨려 편집을 하고, 그걸 다시 UHD로 바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며 "자막 등 후반 작업을 하는 데에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생생한 화질을 구현하는 4K 카메라로 촬영을 하더라도 UHD 편집 장비를 갖추지 못해 HD로 다운컨버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다. 

지상파 방송사가 당초 약속했던 UHD 시설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MBC와 SBS의 UHD 시설 투자 이행률은 각각 UHD 방송 허가 당시 제출한 계획의 64%, 50%에 그쳤다.    

본방송을 앞둔 2015년 지상파 31개사는 2027년까지 UHD 시설 투자에 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상파 주 수입원인 방송 광고 매출이 급격하게 줄면서 계획대로 집행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시설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의무편성 비율을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기존의 HD 프로그램을 UHD로 바꿔 내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 제작 과정을 UHD로 촬영하면 HD로 찍을 때보다 제작비가 1.5~2배 정도 더 들어간다.  

선명한 화질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대형 다큐멘터리, 드라마뿐만 아니라 점차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프로그램도 UHD로 제작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방송사들이 지난해 의무편성 비율 5%을 간신히 넘겼지만, HD 방송을 UHD로 리마스터링한 경우를 제외한 순수 UHD 제작 프로그램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지상파 PD B도 "의무 편성비율을 맞추는 것이 먼저가 되다 보니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우선적으로 UHD로 제작하는 게 현실"이라며 "UHD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우선 편성해야 하는데, 의무편성 비율을 맞추려고 기존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 방송사 관계자 C도 "리마스터링 버전이나 재방송도 UHD 편성으로 인정해 주는 건 방통위가 사업 초기에 사업자를 배려한 것"이라면서도 "방통위의 배려에도 의무편성 비율을 따르는 게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편집없이 송출만 해도 되는 생방송을 UHD로 제작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UHD 방송이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수요를 반영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UHD TV 보급률은 6.3%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수신 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지상파 UHD 방송을 시청하는 가구는 5%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상파 UHD 방송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지상파 방송사의 투자와 함께 선순환 수익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PD D는 "지금처럼 지상파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UHD 활성화가 방송사만 재촉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며 "UHD 방송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가전사의 투자를 유도하는 등 UHD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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