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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 the World ③]

▲ 캐나다에서는 밴쿠버를 거점삼아 근교 빅토리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캘거리 지역의 밴프와 요호를 잊는 자동차 로드 트립, 그리고 동부의 몬트리올과 퀘백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이었다. ⓒ김태경 PD

[PD저널=김태경 평화방송 PD] 세계여행을 꿈꿨던 우리 부부는 아내의 어학연수 휴직을 명분삼아 일상을 벗어난 삶의 쉼표를 찍었다. 촘촘하게 계획을 짜고, 효율적인 동선을 그리며 평소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났다.

캐나다에서는 밴쿠버를 거점삼아 근교 빅토리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캘거리 지역의 밴프와 요호를 잊는 자동차 로드 트립, 그리고 동부의 몬트리올과 퀘백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이었다.

아내는 숙소가 중요해서 저렴한 비용에 편안한 숙소를 찾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6개월간의 긴 여정을 고려해 주로 게스트 하우스나 가성비 좋은 에어비엔비를 이용했다.

10명을 수용하는 남녀 공용 도미토리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난 날이면 왠지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 숙박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풍성한 조식까지 포함된 숙소에 묵었을 때는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는 것 자체가 행복감을 줬다.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샤워도 편하게 하고 개인공간도 있는 더블룸을 예약했다. 어떤 숙소에서 잠을 잤느냐에 따라 그날 컨디션이 달랐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여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얼굴을 물론이고 온몸 구석구석이 가려우면서 피부가 점점 붉은색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모기에 물린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200군데 넘게 줄지어 물린 흔적을 보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일상생활이 힘든 정도였다. 침대에 몰래 기생한다는 배드버그의 공습이 분명했다. 물리고 이삼일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는 이 작은 벌레의 특성상 어디서 물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내와 늘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유독 나만 공격의 대상이 됐다. 차라리 내가 물린 것이 다행일 정도로 그 고통은 상당했다. 결국에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고 고름이 나고 딱지가 앉고 나서야 호전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벌레 때문에 일상이 마비되는 경험을 하고 나선 벌레 공포증까지 생겼다. 그 후로는 새로운 숙소에 갈 때마다 침대 구석구석을 살피고 RhR 개인용 침낭을 깔았다. ‘깨끗하고 편안한 집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지?’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여정 중 우연히 만난 오로라는 이 억울함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 제스퍼라는 유명 관광지로부터 200㎞는 떨어져 있는 시골 동네에서 만난 오로라. ⓒ김태경 PD

록키산맥을 보기 위해 밴프를 중심으로 요호, 제스퍼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여정이 시작됐다. 평소 책이나 TV에서 보던 장면을 가로지르며 대자연 경치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아무 말도 없는 자연이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위안이 됐다.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여행의 목적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넋을 잃다가 일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숙소는 전날 찾아보거나 당일 해가 저물면 근처에서 헌팅을 하곤 했다.

이날은 제스퍼라는 유명 관광지로부터 200㎞는 족히 떨어져 있는 시골 동네까지 오고야 말았다. 동네를 배회하다 근처 목장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급작스럽게 방문했는데 주인아저씨가 흔쾌히 방을 내주었다.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목초지에 집 하나 달랑 있는 목장이었다. 주인 내외는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며 멀리서 온 이방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줬다. 시골 농부로만 알았던 넉넉한 인상의 주인아저씨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기도 했다.

낯선 땅에서 교장선생님 내외와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중 갑자기 컴컴했던 하늘이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더 놀란 것은 녹색 불빛들이 하늘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라가 분명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주인 내외도 평생 이 집에서 살면서 이렇게 강한 오로라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특별한 순간을 함께한 인연이 된 것이다.

아마 일부러 오로라를 보러 왔더라면 그 감동은 딱 기대한 만큼이었을 것이다. 하루를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우연히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기대하지도 않는 선물을 받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예측하지 못한 일은 그만큼 강렬하다.

배드버그의 공습은 피할 수도 없었고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꿈같은 일들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우린 늘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고 24시간 함께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이런 추억 때문에 때론 웃고,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시골 목장에서 만났던 오로라는 어디선가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뜻밖에 인연은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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