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 시대의 감시자로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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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본 권력 등 성역없는 비판... 약해진 존재감은 극복 과제

▲ 지상파 3사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저널=김혜인 기자] 긴 침묵을 끊고 제자리로 돌아온 지상파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의 분투가 두드러진 해였다.

지난 정부에서 방송장악 논란과 잦은 불방을 겪으며 순치됐다는 오명을 쓴 KBS <추적 60분>, MBC <PD수첩>은 올해 정치·자본 권력의 심장부를 겨누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손발이 묶인 지난 9년 동안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던 'MB 관련 의혹' '사법 농단 사건' 등을 파헤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 3월, 7개월 만에 방송을 재개한 KBS <추적 60분>은 '삼성공화국' 1,2부를 연달아 내보냈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수사의 문제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에 집중한 방송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각종 비리와 의혹도 적극적으로 다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의 마약 의혹을 조명한 <추적 60분>은 이시형 씨로부터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받기도 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추적 60분>은 예정대로 지난 4월 18일 전파를 탔다. 

MBC <PD수첩>도 'MB 정부의 자원외교' 문제와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을 파고들었다. 지난 7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1분 여간 추격전을 벌인 <PD수첩> 방송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감시와 비판의 영역은 정치·자본 권력에 국한하지 않고 종교·언론·스포츠·학계로 뻗어나갔다. 

올해 <PD수첩>은 교단의 성역을 건드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명성교회 세습 의혹, 조계종 총무원장의 비리를 정면에서 다룬 방송은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성역화된 종교의 문제를 널리 알렸다는 평가다. <PD수첩> ‘큰스님께 묻습니다’ 편과 ‘명성교회 비자금 의혹' 편은 각각 시청률 5.4%, 5.8%를 기록하며 올해 최고 시청률을 올렸다.

또 <PD수첩>은 지난 8월 2009년 '배우 장자연 사건'에 <조선일보>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방송으로 <조선일보>와 법정 공방이 예정되어 있다.

<PD수첩> 진행을 맡고 있는 한학수 PD는 연말특집으로 마련한 지난 11일 방송에서  “정직한 목격자로서 성역 없는 취재를 다짐했던 <PD수첩>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달려온 한해였다”며 “올해 불가침 영역인 종교권력과 사법농단의 실체, 거대 기업의 횡포를 고발했는데, 오직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꾸준하게 시청자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체육계의 비리에 칼날을 겨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둘러싼 파벌 다툼을 파헤친 ‘논란의 빙상연맹’ 편은 방송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글이 쇄도했다.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보직에서 사퇴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 이후 방상연맹에 대한 특정 감사를 벌여 전명규 전 부회장이 빙상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발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파타야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헤친 방송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연루설을 제기해, 방송 이후 후폭풍에 휘말렸다. 이재명 지사가 왜곡보도라며 법적 대응에 나선 가운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후속 방송을 준비 중이다. 

▲ 지상파 시사프로그램들이 연달아 여성에 대한 범죄에 집중해 보도했다. ⓒKBS, MBC, SBS

과거사 진상규명 흐름에 발맞춰 유의미한 결실을 거둔 방송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2부작으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행 의혹과 민간인 학살을 심층취재, 이를 은폐하려던 세력을 추적했다. 지난 10월 정부가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밖에도 <PD수첩>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간인 학살', 대한 청소년 개척단' 등 과거사에 묻힌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각계 인사들의 성폭력 의혹과 성범죄도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이 관심있게 다룬 이슈다.

<추적 60분>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재판을 비판적으로 다뤘고, <PD수첩>은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성폭력 의혹을 조명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엽기적인 갑질로 지탄을 받은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웹하드 카르텔'을 처음으로 폭로하기도 했다.  

고군분투한 한 해였지만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침체기를 겪는 동안 탐사전문매체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고, 보도 영역에서도 탐사보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탐사고발 프로그램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지켜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올해 11월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 CP를 맡았던 김기슭 PD는 “지상파 뉴스도 심층성을 강화하는 추세라서 시사프로그램의 존재감을 부각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며 “시리즈 형태로 심층성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흐름도 읽힌다. 

최지원 <추적 60분> CP는 “시청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작진의 의지가 강해 올해 사립유치원, 데이트 폭력 등의 문제를 조명했다”며 “이제 탐사프로그램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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