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가수가 퓰리처상을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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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앨범 발매한 ‘드렁큰 타이거’, 20년 동안 직접 실천한 힙합 정신

▲ 타이거 JK 10집 앨범 커버 이미지 ⓒ필굿뮤직 홈페이지

[PD저널=김훈종 SBS PD(<최화정의 파워타임>연출)] 2016년 켄드릭 라마는 4집 앨범 <DAMN>으로 그래미 어워드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빌보드와 롤링스톤은 주저 없이 <DAMN>을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다. 여기까지는 ‘켄드릭 라마 전성시대’라고 한 줄 정리하면 깔끔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켄드릭 라마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이렇게 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힙합은 이제 하나의 음악 장르를 뛰어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울림을 남기는 공기公器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힙합은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나라 가요사에서 랩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노래로는 박남정의 ‘멀리 보이네’(89년 발표), 홍서범의 ‘김삿갓’(89년 발표), 신해철의 ‘안녕’(90년 발표)이 있다. 물론 “‘김삿갓’이 랩이면 서영춘의 ‘붑바라밥바 붑밥바’야말로 랩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에 이르러 비로소 힙합다운 힙합이 시작되었다.

랩이 등장하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세기말의 기운이 대한민국을 감돌던 1999년,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고 일갈하며 ‘드렁큰 타이거’가 가요계에 등장한다. 술 취한 호랑이는 전혀 비틀거리지 않았다. 도리어 뼛속까지 힙합에 취해 있다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그 동안의 랩이 댄스 비트나 사랑 타령에 업혀 그저 대중의 귀를 자극하는 부속품으로 작동했다면, ‘드렁큰 타이거’는 1집부터 호랑이 발톱처럼 매서운 힙합 정신을 뿜어댔다.

최근 10집 <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를 발매한 타이거 JK는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 앨범임을 선언했다. 물론 완전한 은퇴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드렁큰 타이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타이거 JK는 20년의 세월 동안 기존의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행보를 이어왔다. 우선 ‘무브먼트’라는 크루를 만들고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소속사 중심의 가요계에도 느슨한 형태의 뮤지션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의 음악이 아닌 ‘영혼의 음악’을 추구했다. 타이거 JK 본인은 정작 전세에 살면서 전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다. 6집 수록곡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를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 드렁큰 타이거 10집 앨범 타이틀곡 '끄덕이는 노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얼마 전, 필자가 담당하는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타이거 JK가 10집을 들고 찾아왔다. 생방송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한 곡 부르겠다고 한다. 어떤 곡을 부를까 궁금했다.

온에어를 알리는 빨간 불이 켜지고 1집 수록곡 ‘난 널 원해’의 전주가 흐르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그의 목에는 아내 윤미래가 매어줬다는 스카프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소박한 그의 옷매무새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

진짜 ‘스웨그’란 이런 게 아닐까. 수십억 원짜리 펜트하우스, 요일별로 갈아탈 수 있는 여러 대의 슈퍼카,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샴페인에 스웨그가 있는 게 아니다. 영혼을 바쳐 앨범을 만들고 팬들을 위해 목 놓아 부르는 노래,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바로 이런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 진정한 스웨그다. 

‘난 널 원해’의 가사가 귓가를 간질이는 그 순간, 나는 문득 부질없는 상상을 해봤다. 나에게 퓰리처상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당연히 내 마음 속 수상자는 술 취한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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