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계약'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방송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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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표준계약서 도입 1년, 작가 10명 중 3명 서면계약서 작성...짧은 계약 기간· '독소조항' 보완 요구

[PD저널=김혜인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방송작가 표준계약서를 마련한 지 1년을 넘기면서 '구두계약' 관행에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방송사들은 문화부 표준계약서를 준용해 작가들과 집필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크고 작은 마찰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문체부가 발표한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는 작가들의 저임금·고강도 노동 문제와 구두계약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 한마디로 근로 계약과 해고가 가능한 작가들의 노동 환경을 바꿔보자는 취지다.   

표준계약서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문체부 표준계약서에 준한 서면계약서를 작성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방송작가 10명 중 3명은 방송사와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고, 이 가운데 30%가량이 문체부 집필표준계약서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조합원 206명(메인작가 70명, 서브작가 93명, 취재/신입/막내작가 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결과, 32.5%가 서면계약서 체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면계약서 작성 경험이 6.6%이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5배 가량 증가한 셈이다. 

서면계약서를 썼다는 응답자 가운데 문체부 표준계약서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응답은 31.2%였다. 

▲ 작가노조는 2018년 12월 19일~23일까지 5일 간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집필표준계약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1년간 방송사와 서면 계약을 체결한 경험을 묻는 항목에 '없다'는 67.5%, '있다'는 32.5%였다. ⓒ방송작가유니온

실제 방송사들도 문체부의 표준계약서를 활용해 작가들과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난 10월 방송작가 집필표준계약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 KBS는 각 팀별로 작가들과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다. KBS는 방송작가 계약 기간을 6개월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 작가료를 인상한 MBC는 현재 문체부 표준계약서를 참고한 자체 계약서를 준비 중이다. 집필계약서를 마련하지 못해 아직 보도시사 일부 프로그램 작가들은 '프리랜서 업무위임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구두로 계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SBS는 지난 3월 '2개월짜리 계약서'로 비판을 받은 뒤로 '1년'으로 계약 기간을 늘린 자체 계약서를 마련했다. 

지난 8월 tbs 교통방송에 들어온 신입 작가 7명은 계약기간을 1년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과 4대 보험, 연장 근로 수당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tbs ‘근로직 계약서’는 방송작가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한 첫 번째 사례다.

문체부 표준계약서가 현장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나오고 있다. 작가들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개편과 프로그램 폐지 등의 사유로 얼마든지 해고가 가능한 점을 독소조항으로 꼽는다. 

문체부 표준계약서는 계약기간을 명시하고 개편과 편성 변경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당사자 간 합의'로 변경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임경빈 방송작가유니온 정책국장은 “방송업계에 불공정 관행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서면계약서가 오히려 합법적인 해고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상당수의 방송사들은 문체부 표준계약서 대신에 방송사에 유리한 독소조항을 넣어 자체 계약서 체결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와 PD들은 계약 기간 명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지상파 PD는 “프로그램 제작비에서 작가 비용이 지급되는데, 시청률이 안 나오거나 폐지가 결정되면 제작비를 반납해야 한다"며 "이런 사정 때문에 기간을 정해놓고 작가들과 계약하는 게 어렵다”라고 말했다.

방송작가지부는 현재 6개월~1년인 계약기간도 2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3년 이하 작가들은 주로 집필 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송작가의 경력과 분야별로 요구사항이 달라 단일한 계약서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토로도 들린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100명의 작가와 계약을 맺으려면 50개 이상의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며 “작가들도 위치에 따라 의견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방송작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와 일괄적인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열린 '표준계약서 도입 1년' 토론회에서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외래교수는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편성이 자유로워지면서 작가의 고용 안정성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며 “방송사는 작가를 하나의 인적 자원으로 생각하고 실질적인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 도입 1주년 토론회'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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