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 거센 예능계, 삭풍 견딘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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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풍 거센 예능계, 삭풍 견딘 공영방송
키워드로 돌아본 '2018 방송가'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8.12.28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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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미나 기자] 2018년 한 해 동안 방송계는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정상화'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9년간 손발이 묶여 있던 지상파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오랜만에 마음껏 활약을 펼쳤다. 방송사들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주요 키워드를 통해 지난 한 해 방송계를 되돌아봤다. 

여성 예능인들의 눈부신 활약  

지난 22일 열린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은 이영자였다. KBS 연예대상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코미디대상에서 1990년 김미화 씨가 대상을 받은 이후 28년 만의 여성 대상 수상자다. 오는 29일 열리는 MBC 연예대상의 유력한 대상 후보 역시 이영자-박나래다. 2~3년 전 '여성 예능인 기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던 것과는 정 반대로 2018년엔 '예능계 여풍'이라는 말이 익숙한 상황이 됐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여성 예능인들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송은이와 김숙의 '비보티비'를 구심점으로 평균연령 37.6세 걸그룹인 셀럽파이브가 탄생했고, KBS와 올리브TV와 같은 기존 채널에 이들이 주축이 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동안 박나래 역시 코미디와 예능을 넘나들며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만들었다. 예능계에서 비주류를 자임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예능인들의 재능과 가능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된 한 해였다.

▲ 22일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개그맨 이영자 ⓒ KBS

지상파 시사교양프로그램의 부활

지난 9년 간 방송장악 논란 등을 겪으며 권력 감시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지상파 시사프로그램들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켠 해였다. 촛불혁명 이후 정권이 바뀌고 공영방송사의 리더십도 연달아 교체되면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그동안 쉽사리 손댈 수 없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실소유주 의혹' '양승태 사법부 재판농단 의혹'부터 '고 장자연 사건' '명성교회 세습 논란' 등 정치·사회·종교 등을 막론하고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던져준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등장해 볼거리가 풍성했다. 여성의 시선으로 사회 이슈를 탐구하는 KBS <거리의 만찬>은 7월 파일럿 방송에 이어 11월 정규 편성되면서 호평을 얻고 있다. KBS의 30여 년간의 아카이브를 재구성해 만든 스포츠 다큐멘터리 <88/18>도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MBC는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선보인 <곰>으로 자연 다큐멘터리 명가의 부활을 알렸고, SBS <SBS스페셜> 역시 다이어트부터 자영업자의 현실이나 비혼 증가 현상 등 시의적절한 아이템을 연중 꾸준히 선보였다.

'거대 공룡' 넷플릭스의 습격

2016년 한국에 정식으로 진출한 넷플릭스는 2년 만에 한국 방송 생태계를 위협하는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LG 유플러스와 손잡고 IPTV 서비스를 시작했고, 국내 창작자들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예능 프로그램인 <범인은 바로 너> <YG전자> 등을 선보인 넷플릭스는 내년엔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좀비 사극 <킹덤>을 시작으로 <좋아하면 울리는>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넷플릭스의 행보에 기존의 국내 사업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J ENM은 <미스터 션샤인>이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같은 텐트폴 드라마를 발 빠르게 공급하며 넷플릭스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JTBC 역시 제한적으로나마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지상파의 속내는 복잡하다. 원칙적으론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며 협업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지만, 최근 1년 이상의 구작을 판매하는 등 전략을 수정하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SBS가 이례적으로 특집극 <사의 찬미> 방영권을 넷플릭스에 판매하면서 '지상파 간 신사협정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 드라마 촬영 현장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 MBC

드라마 촬영현장 노동환경 문제 대두

지난해 12월 tvN <화유기> 스태프 추락 사고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넷플릭스 <킹덤>과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가 돌연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올 한 해 드라마 제작환경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의식도 널리 공유됐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3곳의 제작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방송 스태프 177명 가운데 157명을 '근로자'로 인정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 업계에서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초장시간 노동의 관행은 쉽사리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10월 tvN <나인룸>과 OCN <플레이어> <손 더 게스트> <프리스트>의 방송사인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등의 제작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 18일에도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이 고용노동부에 SBS <황후의 품격>의 주동민 PD와 SBS, <황후의 품격> 제작사를 고발하고 현장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언론계도 '미투'

언론계도 올해 사회 전반으로 퍼진 미투운동을 피해가지 못했다. 특유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 때문에 공론화가 어려웠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언론계 전현직 종사자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MBC는 무관용 원칙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KBS는 사장 직속으로 성평등센터를 설치하는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징계하고 관련 규정을 손질하는 움직임이 전개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랜 시간 내부 성폭력을 고발하며 싸워 왔던 한 PD는 아직도 복직하지 못한 데다 언론계에서 '미투'를 처음으로 선언한 전직 기자는 상대방으로부터 피소된 상태다. 인사규정의 허점으로 가해자를 징계할 수 없었던 사례도 있었다. 성평등한 언론계를 위해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정된 성 역할에 따른 뉴스 앵커 및 기상 캐스터 기용 문제를 제기했다.

가짜뉴스 공방

이른바 ‘가짜뉴스’의 심각성이 크게 대두된 해였다. 유튜브 등을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고, 휴대폰 메신저 등으로 콘텐츠가 빠르게 유통되는 세상에서 가짜뉴스가 갖는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탓이다. '촛불집회 북한지령설'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 '국민연금 북한지원설' 등의 가짜뉴스가 유튜브와 SNS로 급속도로 퍼졌다. 정부는 지난 10월 범정부 차원의 가짜뉴스 근절 대책을 발표하려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쳐 발표를 보류한 상태다.

가짜뉴스를 둘러싼 정쟁도 크게 불거졌다. 정부가 대책 마련을 언급하자 자유한국당에선 '21세기 분서갱유'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에 나섰다. 지난 10월 유튜브 장애로 일부 보수논객의 채널에 일시적으로 접근이 제한되자, 자유한국당에선 '정부가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초연결사회'로의 진입이 빨라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인한 논쟁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이용자가 가짜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도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 ⓒ PD저널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가시화

지상파 방송사의 숙원사업인 중간광고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경영 위기에 놓인 지상파는 올 한 해 중점적으로 중간광고 도입을 위한 물밑 작업을 펼친 반면,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중간광고 도입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방통위가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위해 방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뒤에도 자유한국당은 입법예고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중간광고 도입 이후다. 광고수입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상파에겐 중간광고로 인한 수익이 일시적으론 숨통을 틔워주긴 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중간광고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월 공개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간광고 도입으로 지상파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연 최대 869억 원 정도였다. 

'정상화' 과정 속 공영방송 진통

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한 공영방송에서는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됐지만, 이 과정에서 진통도 만만치 않았다. KBS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진실과미래위원회를, MBC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정상화위원회를 각각 가동하고 과거 불공정 보도 사례에 대한 진상규명에 나섰지만 안팎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공격을 받거나 이메일 사찰 의혹, 보복인사 의혹 등을 받기도 했다. 진실과미래위원회의 경우 KBS 공영노조의 가처분 신청 제기로 징계요구권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과거, 혹은 '적폐'를 청산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처는 공영방송 안에 남았다. 27일 MBC는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총파업 기간 중 들어온 이른바 '파업대체인력'의 고용계약을 지금처럼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의 반발 등 갈등 요소가 남아 있어 화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과반노조가 없는 KBS도 계속되는 내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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