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대체인력 끌어안은 MBC, 후폭풍 불가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야 "청산 연내 마무리" 압박에 '포용' 결단 내린 듯... 노조 기자협회 등 "결정 재고" 반발

▲ ⓒ MBC

[PD저널=이미나 기자] MBC가 파업대체인력으로 분류됐던 구성원에 대한 근로계약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노조와 MBC 기자협회는 인사위원회 결정 재고를 요구하며 규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파업대체인력'에 대한 계약 유지 결정은 두달 전까지만 유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MBC는 지난해 12월 취임한 최승호 사장이 '적폐 청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뒤로 정상화위원회 등을 설치하고 과거 청산에 주력했다. 

최승호 사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화합이나 포용 등의 이야기를 밖에서는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안에서는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상화위원회 역시 과거 불공정 보도 의혹의 진상을 밝혔고, 부당노동행위나 채용비리 관련 감사도 진행했다.  

불공정 방송과 연루된 과거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책임을 철저히 따진 만큼 2012년 노조 파업 기간에 들어온 직원들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최승호 사장을 비롯해 핵심 경영진의 다수가 2012년 파업 기간에 부당 인사, 해고 등의 불이익을 당한 전력이 있어 단호한 적폐 청산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두달 전까지만 해도 MBC는 입장문을 내고 "2012년 파업기간 동안 이루어진 전문계약직·계약직·시용사원 채용이 불법적인 파업대체인력 채용임을 분명히 한다"며 "공정한 채용에 대한 시대정신과 사회적 기대, 강원랜드 등 외부 사례를 참고하여 파업대체 인력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MBC가 이번에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면서 외부의 압박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MBC가 보복성으로 대량해고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펴 온데다, 여당 관계자들 입에서도 '청산 작업을 빠른 시일 내에 매듭짓고 재건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소속 의원은 최승호 사장이 해고자 신분이었음을 언급하며 "해고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정상화 방식은 보복이 아닌 조직 화합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여당 소속 의원도 "시용기자들 역시 희생자들이며, MBC 경영진이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노조MBC본부(이하 MBC)는 27일 성명에서 "최근 방통위원들과 MBC 경영진이 만난 자리에서 한 방통위원은 '구조개혁 한다면서 시용기자들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불법 대체인력을 내보내지 말라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여야를 불문한 '화합' 주문에 경영진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분석이다. 한 MBC 기자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방통위 등 다 '포용하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느냐"며 "내부적으로 쇄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외부의 압박 때문에 오히려 거꾸로 된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MBC가 '파업대체인력' 거취 문제를 서둘러 매듭을 지은 측면도 있다. 

MBC가 1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년 4월까지 실시하는 명예퇴직 신청 결과를 지켜본 뒤 '파업대체인력' 문제를 마무리해도 늦지 않았다는 의견도 내부에서 나온다.  

한 MBC PD는 "해를 넘겨 2·3차 명예퇴직을 시행한 뒤 파업대체인력의 거취를 결정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갑자기 26일 인사위원회를 연 것은 '연내에 청산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한 탓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외부의 압력이 실제 작용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파업대체인력을 포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최승호 사장의 결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인사위원회를 마치고 다음날 방송문화진흥회에 보고를 하기 전까지 MBC 이사들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격렬한 토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MBC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파업대체인력에 대한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앞으로도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장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며 "내년부터 시행될 업무 재배치를 통해 이들에게도 역량에 맞는 업무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포용과 화합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오히려 내부 갈등이 증폭될 조짐도 보인다.

당장 지난 1년 동안 경영진의 과거청산과 개혁 작업에 노측이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며 별다른 충돌이 없었던 노사관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27일 "불법 대체인력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경영진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MBC본부는 28일에는 이를 대자보 형태로 상암동 MBC 사옥에 내건 것을 시작으로 후속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대체인력 중에 기자들의 비중이 높아 기자 직군의 반발도 크다. 

28일 MBC기자협회는 "즉각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어 불법 대체인력과 관련한 모순된 결정을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대체인력 채용이 불법이라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며 "그 합당한 조치는 당초 감사 권고였던 '채용 취소'에 준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