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이야기꾼' 김광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게 하는 화법...눈시울이 붉어진 연말 수상소감들

▲ 가수 고(故) 김광석씨. 김광석 추모사업회 제공.ⓒ뉴시스

[PD저널=하정민 MBC PD(<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연출)] 오는 6일이면 가수 故 김광석님의 23주기다. 그는 오래 사랑받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노래와 노래 사이, 객석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법석을 떨지 않는데도, 말과 말 사이에 뜸이 많은데도 귀를 기울이게 했다.

관련 방송을 준비하느라 음성 파일들을 편집하다가, 담담히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여러 차례 손을 놓고 가만히 듣게 됐다. 만약 이 분이 아직 우리 곁에 계시다면 ‘분명 라디오 DJ를 했을 거야’하고 생각하면서.​

사실 별 대단한 얘기들도 아니다. 그림책을 보고 든 생각, 서른이 된 후배랑 주고받은 이야기... 그런데도 객석에선 자주 소박한 웃음이 터진다. 일상 속에서 흔히 나눌법한 작은 이야기에 천천히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데, 그 생각들이 노래만큼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방식이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흔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다는 꿈을 얘기하던 대목에서.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다리가 닿겠니”라며 상당히 걱정을 했다고 한다. 웃어넘기려다 은근히 걱정이 됐는지 충무로 매장에 가서 주인아저씨에게 한번 앉아봐도 되는지를 묻는다. 아저씨는 ‘살거유?’ 묻는다.

여기서 김광석의 답이 참 좋았다. 그는 ‘조만간에요. 저한텐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한번 앉게 해주세요’하고 답한다. (앉아보니 다리와 팔이 닿아 안심했다고 한다. 오히려 오토바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가벼운 몸무게가 문제가 될 듯했다고.)

‘저한텐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이 한마디 말이 그의 성품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꿈이거든요, 소원이에요, 저 나중에 진짜 살 거거든요’ 같은 말들과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다루면서도 너무 내세우지 않고, 또 상대에게 신중하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아주 조심스런 어투. 가볍거나 과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그의 남은 말들을 여러 차례 돌려들으며 인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비슷했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봤다.​

요새 참 많은 말들을 들었다. 지난 세밑에는 같이 일하는 진행자가 상을 받게 돼 응원 차 시상식 구경을 다녀왔다. 평생 맞은 아침보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맞이한 아침이 더 많다는 우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의 ‘동디’가 201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DJ부문 우수상을 받게 돼서다. 워낙 말을 잘하는 분이니 수상 소감도 기대가 됐다.

어떤 얘기를 꺼낼까. 우리 스태프 이름은 언급해줄까(며칠간 협박 아닌 협박을 많이 했다), 기대하고 있는데 함께 우수상을 받은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정선희 씨 수상 소감에 먼저 마음이 덜컥했다.

“사실, 작가분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해요. 글만 써서 된다는 생각, 작가 지망생 여러분들 일찌감치 버리세요. 정말 감정노동이고요, 섭외, 스케줄, 출연자 심리상태까지 전천후로 움직여야 하는 작가분들에게 이 감사를 돌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내년 연봉협상을 위해서 더 좋은 수치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같이 일하는 작가들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그의 수상 소감은 작가들이 모인 단톡방에서도 실시간으로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의 짧은 연설 안에는 평소 살뜰하게 주변 스태프를 살폈을 정선희 씨의 마음이 담뿍 담겨있었다.

‘열심히 하겠다, 잘 하겠다’가 아니라 ‘연봉협상을 위해 수치를 올리겠다’는 애교 섞인 다짐에는 우리는 한솥밥 나눠먹는 식구라는 의미도 담겨있어 따뜻하게 들렸다.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와 함께 일하면 절로 힘이 난다. 힘껏 박수쳤다.

이어지는 김제동 씨의 수상 소감도 못지않게 좋았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만이 느끼는 억울함 같은 게 있죠. 라디오는 늘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였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도 그런 분들의 목소리가 되겠습니다.” 평소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생소(?)하긴 했지만, 라디오에 애정이 꽤 생겼구나 싶어 동료로서 무척 기뻤다.​

말 많은 직장에서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 유독 말에 관심이 많고 말과 말 사이에 의미를 부여하려 드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한마디에는 많은 장면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알아채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지금, 편집기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라이브가 경쾌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