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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찬가

산책하면서 듣기 좋은 노래 ‘산책’...세련된 선율과 시어 같은 노랫말에 공감 박재철 CBS PDl승인2019.01.11 11: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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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산책, 좋아하시나요? 산책은 게으른 데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입니다. 정처 없이, 목적 없이, 터벅터벅 걷다보면 무거운 기분도 가벼워지고, 흩어진 생각도 가지런해집니다.

산책의 이점이랄까, 애착이랄까, 여러 말보다 한 곡의 노래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일명 산책 찬가(讚歌)가 있어 지인들에게 알리곤 합니다. ‘소히(sorri)의 산책’, 나온 지 꽤 됐습니다.(2010년 발매) 그야말로 산책하면서 듣기 딱 좋은 곡입니다.

처음에는 'sorri'를 '소리'로 읽었다가 ‘아니네...’ 했습니다. sorri는 브라질 공용어인 포루투갈어로 ‘미소’ 혹은 ‘미소를 짓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본명 (최)소희와 닮은꼴의 포루투갈어 단어에 ‘음악으로 삶에 미소를 짓게 하겠다’는 소망을 보태 정한 이름이라고 하네요.

왜 많은 나라말 중에 하필 브라질일까? 했더니, 국내 브라질 음악 밴드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전력이 그 까닭을 설명해줍니다.

미국 재즈에 브라질 춤곡인 삼바가 더해져 탄생한 장르가 보사노바죠. 남미의 풍취가 물씬 풍기는 보사노바 곡인 소히의 산책을 듣고 있노라면 ‘산책’이나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동합니다. 브라질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이름에도 음악에도 아낌없이 풀어 놓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곡의 진행은 마치 한 겹 한 겹 층을 쌓아 올린 크레이프 케이크의 달콤함에 견줄 만합니다. 바이올린 현의 울림이 첫발자국을 떼면 기타가 뒤따라옵니다. 곧바로 소히의 보이스가 케이크 위의 크림처럼 곡의 템포에 맞춰 살포시 얹어지면서 듣는 이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립니다.

보이스의 청량함을 잠시 음미하다보면 어느새 그 위에 리듬 악기인 드럼이, 연이어 선율을 만들어내는 피아노가 자신의 사운드를 겹겹이 노래에 더하며 화음의 파도를 일게 합니다.

▲ 소히 2집 앨범 '밍글' 자켓 이미지.

말 그대로 풍성하고 신선한 잔물결이 켜켜이 쌓여 귓바퀴를 타고 밀물처럼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보사노바가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보사노바와 산책, 이 둘은 모서리가 남지 않게 딱 포개지는 짝인 셈입니다. 작곡을 한 이한철의 역량이 짐작되는 유려한 곡의 흐름에 소히가 직접 쓴 노랫말도 참 멋집니다.

보고 싶어라, 그리운 그 얼굴 물로 그린 그림처럼 사라지네

보고 싶어라, 오늘도 그 사람을 떠올리려 산책을 하네

산책을 하면서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경우가 평범한 것일진대 노랫말은 그 반대입니다. 그리움을 불러내려고 일부러 산책을 합니다. 그리운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산책입니다. 그리움의 대상과 함께 한 산책을 잊지 못하는구나, 이런 짐작을 해보게 됩니다.

거기에 이런 표현은 또 어찌나 포근한지요?

따뜻한 손 그리고 그 감촉 내가 쏙 들어 앉아 있는 그 눈동자

상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손잡고 걷다가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상대방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때를 상상케 합니다. ‘쏙 들어 앉았다’는 표현에는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내가 상대방의 눈동자 속에 있다는 것일 텐데, 온전하면서도 완전한 애정의 대상임이 ‘쏙’ 이라는 한 자에 넉넉히 담기고도 남습니다.

그 마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던 그가 보고 싶어지네

대가 없이 기대 없이 나 이외의 어느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건 부모자식 관계에서 보이는 모습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산책의 동행자가 꼭 연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추측을 이 가사에서 합니다. 나중에 찾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이 곡은 실제로 고인이 된 아버지와의 산책을 떠올리며 썼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소히의 산책’은 사부곡인 셈입니다.

정갈하고 세련된 선율과 시어 같은 노랫말을 듣고 있노라면, 신발 끈을 묶고 당장 현관문을 나서야 할 것 같은 노래. 이 아름다운 곡에 등 떠밀려 날이 풀리는 올 초봄에는 좀 더 많은 이들이 길 위에 서길 바라봅니다. 

걷다가 우연히 이어폰으로 이 노래가 흘려 나오는 걸 듣게 된다면 가볍게 웃으며 서로 목례라도 했으면 합니다. 어느 한갓진 산책길에서.

 


박재철 CBS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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