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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크게 듣는 '거리의 만찬' 촬영 현장

지난 7일 '노동의 조건' 기획 첫번째 활영...'짜인 대본' 없고 출연자에 '집중' 이미나 기자l승인2019.01.18 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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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청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세상에 알리게 된 故 김용균 씨의 사고. 이를 기리기 위해 <거리의 만찬> MC들이 지난 7일 추모 분향소를 찾았다. ⓒKBS

[PD저널=이미나 기자] 지난 7일 KBS <거리의 만찬> 올해 첫 녹화가 진행된 광화문광장은 미세먼지로 온통 잿빛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선 KBS <거리의 만찬>의 세 진행자, 방송인 박미선과 김소영, 그리고 정치학 박사 김지윤 씨.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故 김용균 씨의 시민분향소 앞에서 세 사람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2019년 첫 녹화의 시작이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었다는 것. <거리의 만찬>의 색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014년 한 차례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뒤 지난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까지, <거리의 만찬>은 줄곧 사회적 약자와 시선을 나란히 했다. 스튜디오에 앉아 수치를 나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단 거리에서 당사자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봤다.

13년 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해고 승무원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주민 앞에 무릎까지 꿇었던 장애학생의 부모들, '임신 중단'을 경험한 여성들, '맘충'이라는 멸칭을 감내해야 했던 엄마들도 <거리의 만찬>에서 온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거리의 만찬>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지만 '기계적 중립'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거리의 만찬>을 기획한 남진현 PD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찬반양론을 기계적으로 다루는 건 비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거리의 만찬>의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날 촬영분 큐시트에 적힌 부제는 '노동의 조건-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였다.

윤대희 <거리의 만찬> PD는 "거대 담론에 주목하기보다 진짜 '할 말이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시간", 정세영 작가는 "다른 시사 프로그램과 다르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거리의 만찬>을 소개했다.

▲ 지난 7일 진행된 KBS <거리의 만찬> 촬영현장. ⓒ PD저널

사회적 약자에게 눈높이를 맞추면 뉴스에 가려진 인물이 드러난다. <거리의 만찬>은 사회적 이슈의 한가운데 놓인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거리의 만찬>에 짜인 대본이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윤대희 PD는 "출연자에게 사전 질문지를 전달하지 않고, 섭외 과정에서도 '편하게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하루 촬영을 마치면 편집에만 꼬박 2주를 쓸 정도로 후반 작업이 만만치 않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를 눌러 담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지다. 

진행자들도 대략적인 구성안과 사전 자료 정도만 받는다.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방송을 이끌어가는 건 진행자들의 몫이다.

촬영 시작 전에 광화문 한 카페에 모인 진행자들은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와 산업안전보건법의 미비점, 언론보도의 문제점까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대기 시간에나 이동 시간에도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진행자들의 말수는 확 줄었다. "공부하려고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참여할수록)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른 방송에선 (내가) 말을 많이 했는데 <거리의 만찬>은 주로 듣는 방송"이라는 박미선의 말처럼 제작진도, 진행자도 온통 듣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광화문 분향소 방문 이후 진행자들이 향한 곳은 종로의 한 고기집.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개돼 늘상 북적이는 곳이다. 이날 출연진인 김용균 씨의 동료였던 김범락 씨와 삼성 휴대폰 부품조립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시각장애 2급을 받은 김영신 씨, 그리고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다 사망한 故 이민호 씨의 아버지 이상영 씨가 불판을 놓고 마주 앉았다. 

▲ 지난 7일 진행된 KBS <거리의 만찬> 촬영현장. 출연진이 종로의 한 고기집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다. ⓒ PD저널
▲ 지난 7일 진행된 KBS <거리의 만찬> 촬영현장. 제작진이 모니터를 통해 촬영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 PD저널

지글지글 삼겹살이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출연자들의 울분 섞인 토로가 고기집을 채웠다. 

아들의 죽음을 회상하던 이상영 씨가 "이게 무슨 나라야, 더러워서 살기 싫다"고 분노를 터뜨리자 제작진 사이에서도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진행자들도 힘겹게 말문을 연 출연자들의 호소를 듣는 데 집중했다.  

"오늘 같이 이야기를 하면 속이 좀 나으세요?" 박미선 씨는 녹화 말미에 세 출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답답하던 게"라고 운을 뗀 김범락 씨는 "누구에게도 살아온 이야기를 오늘처럼 진솔하게 해 본 적이 없다"며 끝내 눈가를 훔쳤다.

윤대희 PD는 광화문 촬영 말미에 출연진을 향해 들어 보인 화이트 보드에 이렇게 썼다.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날 촬영분은 '노동의 조건' 기획 첫번째 이야기로 18일 오후 10시 전파를 탄다. 


이미나 기자  neptune@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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