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에 선 ‘포토라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격권과 알권리의 대립... 현실적인 보도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 피의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최근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인 사찰 혐의로 영장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 포토라인에 섰다. 양손에는 천으로 덮인 수갑을 찬 채였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무죄를 떠나 포토라인에 선 것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여겨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시 여겼던 포토라인 앞 ‘잠시 멈춤’은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1일 검찰에 출석하며 대법원 앞에서 ‘하고싶은 말’을 한 후 검찰청 현관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은 ‘패싱’했다.

포토라인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있다. 취재편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포토라인은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피의자 망신주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회적 형벌로도 기능하고 있어 당장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포토라인을 통해 '밀실수사'나 '비밀소환', '봐주기 수사' 등을 차단하며 수사의 공식화·공개화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일정 부분 보장하는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무분별한 취재경쟁의 질서를 잡고 피의자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취재경쟁을 벌이던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가 2㎝가량 찢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이듬해인 1994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인터넷 기자협회 등이 나서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2년 뒤에 만들어진 포토라인 운영 시행준칙은 변화하는 취재 환경 적응과 새로운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포토라인 시행준칙은 이후 별다른 수정이나 보완없이 세월을 보내다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2014년 5월. 배우 전양자 씨가 세월호 사건과 관련,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동행자도 포토라인에 섰는데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는 바람에 ‘초상권’ 관련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1심에선 초상권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언론사 패소 판결을 내렸다. 주요 법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포토라인은 임의로 만들어진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포토라인 앞에 선 것만으로는 초상에 대한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하는 등 촬영 동의로 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취재진 앞에 서서 카메라를 피하거나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초상의 촬영에 동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1심 판결은 2017년 2심에서 언론사 승소로 뒤집힌다. 그 주요 법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포토라인은 취재‧촬영이 예정된 공개적인 장소이며 수사기관과 언론사 사이에 합의된 취재경계선으로 동행자의 각별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

-자발적으로 동행해 취재진이 포진한 포토라인에 서서 촬영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포토라인에 들어오는 동행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적극적 자기방어행위를 해야 촬영거부 의사로 해석하고 있다.

-보도된 지 3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한 것은 촬영‧보도 당시에는 이를 묵인 내지 동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상호 합의로 2심에서 종결됐다. 포토라인을 두고 법원 판결도 엇갈릴 정도로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보도의 자유는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포토라인을 당장 없애버리고 싶다면 합당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언론사도 포토라인 질서와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각 사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어겼을 시 처벌규정도 보완해야 한다.

한국의 밀실 문화, 수사기관의 폐쇄주의, 봐주기 수사 등의 후진적 전통과 언론사의 과잉취재경쟁이 만들어낸 기형적 산물인 포토라인. 이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