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리 백서’ 공동제작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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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리 백서’ 공동제작을 제안하며
지역방송사 관계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각 지역 고유의 소리를 모으는 공동프로젝트 필요성 커
  • 안병진 경인방송 PD
  • 승인 2019.01.22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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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불쑥 편지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라디오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인천에 살지만 이혼도 하지 않았고 아직 망하지도 않았어요. ‘이부망천’이란 말은 지난해 처음 들어봤지만, 지역에 대한 폄훼와 서울 중심의 사고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느끼고 살아요. 방송판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지역에서 방송하기란, 그것도 라디오 방송 만드는 것은 아시다시피 쉽지 않은 일이에요.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편지는 지역에서 방송하는 분들에게 띄우는 ‘위문편지’가 아니에요. 우편배달부와 시인 네루다가 주고받은 편지가 그렇듯 말이죠.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에서 섬을 떠난 네루다에게 우편배달부는 편지를 써요. 네루다의 부탁대로 섬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녹음해서 말이죠. 이 아름다운 영화가 제 청춘을 라디오로 이끌었습니다. 정작 시인은 네루다가 아니라 우편배달부였고, 우편배달부의 서툰 편지는 무심했던 네루다의 마음을 뒤흔들었어요. 제 마음도요.

▲ 내리교회 종소리 녹음 후 작가, 엔지니어와 찍은 기념사진. ⓒ안병진 PD

저는 요즘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소리를 녹음합니다. 서해 5도가 있는 옹진의 섬과 강화의 포구, 숲, 교회, 사찰, 화물열차, 원도심의 골목길, 우리 동네….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소리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사라지기 때문에 기록해둬야 할 소리들도 많더군요. 우편배달부가 녹음한 걸 네루다에게 보내듯 라디오 전파로 띄어 보내요. 이런 방송을 해서 지난 연말 상을 하나 받았어요. 외람되지만 그때 저의 수상소감 한 번 들어봐 주세요. 그때는 떨려서 제대로 말을 못했습니다.

“인천에 살면서 인천 섬들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방송을 제작하며 ‘소리’로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지역방송사 사장님들도 계시고 선후배 동료들도 계시는데,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지역의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해서 기록하고 방송하면 어떨까요. 지역끼리 서로 네트워킹해서 지역의 소리를 하나의 사운드 콘텐츠로 묶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니, AI 스피커니 하는데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합니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와 사운드로부터 시작해요. 지역방송사가 함께 인공지능 콘텐츠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부끄러움을 접고 이렇게 편지글을 드립니다. 이 편지는 지역에서 방송하는 분들께 띄우는 ‘사업제안서’에요. 인천만의 소리가 있듯 제주만의 소리, 부산, 대전, 광주, 강릉 등 각 지역만의 고유의 소리가 있겠죠. 그 지역만의 특별한 역사와 문화가 있듯이 말이죠.

그런데 서울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조차 잘 모르더라고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엇이 생기고 사라졌는지, 그러는 동안 이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무엇인지.

지역방송사에서 일하는 게 외로운 일도 괴로운 일도 아니에요. 제작 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지역의 아름다움과 가치 있는 이야기를 찾아 전하는 일, 그걸 일종의 사명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제껏 스스로 지역 마이너 방송이라고, 마치 뒷전에 밀려난 사람처럼 그런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저 또한 알게 모르게 서울을 쳐다보고 살아와서 그런 것은 아닐까 반성합니다.

인천은 인천이라 특별하고 재밌는 곳입니다. 당구 칠 때 쿠션에서 일명 ‘빡’이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죠. 이름은 ‘동’인천인데 사실 위치는 서쪽인 ‘마계도시’ 맞아요. 지역은 그 자체로 특별해요. 서울만 특별시가 아니라 모든 도시, 모든 지역이 특별한 곳입니다. 그 특별한 공간을 사운드 콘텐츠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 소리를 서로 들려주고, 한데 묶어 이를테면 ‘지역소리백서’를 만드는 것 말이죠.

지역 방송인이라 불리는 우리는,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다른 무엇보다 방송 만드는 일로 언제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P.S.

프로젝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세요.

radiovirus@empal.com

2019.1.21.

마계 인천에서 안병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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