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노에 투영된 시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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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연구비평모임, BBS '분노의 시대, 분노의 기술' '2018 혐오민국 보고서' 주제로 열띤 토론

▲ 지난 29일 열린 PD연합회 연구비평모임. ⓒPD연합회

[PD저널=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한국PD연합회 새해 첫 프로그램연구비평모임이 지난 29일 열렸다. 한국PD연합회 강의실에서 BBS 라디오 다큐멘터리 <분노의 시대, 분노의 기술>(연출 박광열), <2018 혐오민국 보고서>(연출 황고운)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사회는 박은주PD(tbs <TV책방 북소리> 연출), 발제는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맡았다. 

프로그램에 대한 비평과 토론은 물론, 정동렬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과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 등 전문가의 참고발언을 통해 ‘혐오’와 ‘분노’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제와 토론 내용을 요약했다.   

김언경 사무처장: 좋은 책 몇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2018 혐오민국 보고서>는 한 시간에 다루기엔 너무 큰 주제였다. 여성혐오 하나만 다루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성소수자, 예멘 난민 등을 다 넣으려다 보니 맛보기에 그친 아쉬움이 있다.

<분노의 시대, 분노의 기술>은 개인적으로 유익했다. 사회적 부조리에는 잘 대처하지만 개인적으로 무례한 일을 당하면 뒤늦게 분노하며 속앓이를 하곤 했는데,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웠다. 분노의 사회적 맥락을 좀 더 신랄하게 짚어주었으면 좋았겠다.

<2018 혐오민국 보고서>는 성소수자, 난민, 여성 등이 사회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는지, 어떤 혐오표현에 노출되고 있는지를 전달했다. 정치인의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큰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고, 학교에서 표출되는 혐오 표현은 분명하게 대응해야 하며, 방송에서는 금지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전해줬다.

홍성수 교수가 ‘맘충’에 대해 설명하면서 “혐오표현의 문제는, 말하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을 지목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동일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 전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대목이 특히 좋았다. 실제로 조용히 밥을 먹는 사람들도 ‘맘충’이라는 말을 의식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 준 것은 유익했다.

그러나 ‘혐오’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순히 싫은 것을 싫다고 하는 것과 ‘혐오 표현’은 어떻게 다른지 좀 더 면밀하게 정리해 주지 못했다. ‘혐오’란 단어는 조심스레 써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혐오’는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 차별하는 선전, 선동이다. 아무데나 ‘혐오’란 말을 붙이면 오히려 혐오가 확산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을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말”, “소수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속성이나 고정관념을 악의적으로 부추기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말, 기존의 차별을 더 강화하고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주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여학생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편향적 표현들이 다 혐오 표현”이라며 “남학교는 00고, 여학교는 00여고라고 하는 것도 여성혐오”라고 말했다. 이건 차별적 표현일 수는 있지만, 혐오 표현은 아니다.

“남성들의 지위가 취약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여성 혐오를 더 부추긴다”는 대목도 수박겉핥기로 지나갔다. 다큐 한 편에 이걸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혐오에 대한 입문 다큐멘터리로 손색이 없었다.

<분노의 시대, 분노의 기술>은 분노와 감정 조절에 대한 종합백화점이었다. 충분한 자료조사와 엄청난 인터뷰의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1부는 분노 범죄 이야기를 들려준 뒤 “살인사건 10건 중 4건은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하며, 지난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5986명으로, 2013년에 비해 21.3%가 증가했다”고 시작했는데, 설득력 있는 접근이었다.

“분노는 결코 불필요한 감정이 아니며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의지이자 노력의 산물”이라는 말은 화를 잘 내는 현대인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특히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와 삶의 동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려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상태에 그냥 안주하지 않고 변화시키는 에너지로 만들면 된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하여 실직적인 해결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법 스님의 대안은 바람직했다.

제2부 ‘분노의 기술, 나를 살리는 화’는 뇌과학이 발달한 미국, 프랑스 등 외국의 감정조절 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프랑스 생 조셉 학교의 감정 조절 프로그램과 우리나라 하남시 윤슬중학교 사례를 대비시켰고, 어린이의 분노조절을 위해 학부모도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상과 템플스테이는 물론 예술치료 방법도 소개했다.

오랜 취재와 인터뷰의 결론은 “분노는 분노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로, “분노는 지혜롭게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 삶과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노력과 사회적인 노력을 결합시키면 나를 성장시키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지난 29일 열린 PD연합회 연구비평모임. ⓒPD연합회

박광열 PD: 1부는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2부는 “분노라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까?”로 나눠 살폈다. 아이들이나 엄마들이나 ‘학원, 공부, 성적’ 문제에서 가장 심하게 분노하는 경향 있는데, 감정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맹목적인 분노는 “내가 독을 마시면서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6초의 법칙’을 기억해 두면 유용하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6초만 기다렸다가 화를 내면 화를 증폭시키지 않을 수 있다.

황고운 PD: 다문화 프로그램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SNS 상의 혐오 표현을 취재하다가 ‘혐오’ 자체로 관심이 확대됐다. 일본 넷우익들의 혐한 발언(hate speech)에 충격 받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예멘 난민들을 똑같이 대하고 있더라. 한국과 일본의 경험은 거울과 같다.

전문가들도 아직은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 자체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를 극복하고 약자들을 돕고자 하는 분들도 많다. ‘여성 혐오’라는 주제만으로 5부작이 가능한데 모든 것을 한 편에 넣으려 하다 보니 입문용이 됐다. 앞으로 각론을 만들고 싶다.

정동렬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 “잘 만난 PD 1명이 활동가 10명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소수자다. 학교에서 혐오 표현을 반복적으로 듣고 자살하는 성소수자가 많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 인권위원회가 낸 두 차례의 보고서를 프로그램에 잘 반영한 것 같다. 혐오 표현을 경험한 사례 많다. 온라인에서는 98%, 오프라인에서는 92%에 달한다. 특히 청소년층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인권위에서 혐오대책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앞으로 PD들과 인권위가 함께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황성연 독립PD: 지금 문제가 되는 차별과 혐오의 50% 이상은 수구 기독교 세력이 만든 것이다. 종교 권력 앞에서 언론도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수구 개신교와 싸우고 있다. 차별과 혐오 문제의 근원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박대식 KBS PD: 퀴어 축제 때 혐오 시위대의 폭언에 상처 입은 사람 많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여전히 전쟁 상황이다. 세월호 1년 다큐멘터리 만들 때 자살 충동을 느꼈다. PD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유족들의 트라우마는 최소 10년~20년은 가지 않겠는가. 방송은 자기 역할의 100분의 1도 못했다.

김우성 YTN PD: 혐오와 분노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혐오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자기 목적을 위해 이를 이용한다.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할 필요가 있다. “혐오=범죄”라는 인식을 확실히 하고, 이를 위반하면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 차별금지법이 절실한데 정치인들이 극우 기독교 세력에 밀려서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다. 새롭게 법안 만들 때 참여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다.

박광열 PD: TV 다큐와 비교할 때 라디오 다큐는 카메라 필요 없이 마이크만 갖고 취재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있다. 강남역 사건 2주기 때 황PD와 함께 취재를 갔다. 그릇된 혐오 표현에 대해 분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분노의 구조적 측면을 좀 더 고민하겠다.

황고운 PD: 중학교 2학년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었고, 프로그램에 ‘랩’을 넣어서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다. 취재 갈 때 예비 녹음기가 없어서 좋은 현장을 흘려보낸 적이 있다. 예비 녹음기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안수영 한국PD연합회장: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훌륭했고, 오늘 유익한 논의가 더 좋은 프로그램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PD연합회는 올해 연구비평모임이 활성화되도록 열심히 지원하겠다.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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