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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PD의 '덕질'

BTS 영화 상영관 가득 메운 '아미'들로부터 느낀, '음악'의 의미 허항 MBC PDl승인2019.02.08 16: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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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 스틸컷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PD저널=허항 MBC PD]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실황을 영화로 만든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을 개봉일에 맞춰 보러 갔다. 최첨단 상영관이라는 이유로 관람권이 무려 만 오천 원이었지만, 싱얼롱 상영관은 이미 매진이었다.

영화는 예상대로 명불허전이었다. 스크린 속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은 흡사 '방탄소년단 공화국'이었다.

그 안에서 히트곡은 물론 각자의 솔로무대까지 선보인 방탄소년단은 <쇼! 음악중심>에서 봤을 때보다 한층 더 큰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월드스타이기 이전에 훌륭한 뮤지션이었다. 방송에서 만났던 모습은 그들이 가진 매력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 방탄소년단의 모습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상영관을 채운 '아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나오는 곡들을 모두 따라 불렀다. 일상 속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미'끼리 정해놓은 (곡마다 다 다른) 응원구호들도 입 모아 외쳤다. 스크린 속 공연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는 진짜 콘서트장처럼 기립해 무아지경으로 떼창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에 방탄소년단 노래들을 벼락치기로라도 숙지하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롤이 끝까지 흐르고 나서야 하나 둘씩 자리를 나서기 시작한 상영관은, 행복의 에너지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동의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보였다. '내 가수'를 두 시간 동안 원 없이 봤다는 기쁨이 이심전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잔뜩 상기된 감정이 느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열광하는 아미들이 참 부럽다'.

다소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왜 나는 학창시절에 음악에 빠지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할 때가 있다.

H.O.T.의 팬도 젝스키스의 팬도 아니었던 나는, 퀸이나 메탈리카의 팬도 더더욱 아니었다. 특정 음악이나 뮤지션에게 크게 빠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승환의 앨범을 사 모은 것 정도가 내가 해 본 최고의 열광이었다. 그렇다고 음악 아닌 다른 재미도 좇지도 않았던, 건조한 모범생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능PD가 업이 되고 나니, 나의 그런 과거(?)가 유달리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많은 분야가 그러할 테지만, 특히 예능PD들 중에는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이 꽤 있다. 즉, 본인이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것이 직업으로 이어져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다.

이들은 특정 가수의 팬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LP를 수집하거나 직접 밴드 활동을 하는 등 어려서부터 음악 마니아의 행보를 보여 왔다고 한다. 그들이 특히 음악 프로그램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 내심 질투가 나기도 했다.

반면 나에게 음악은 ‘업’에 가까웠다. 덕업일치 PD들 사이에서, 나는 노력형(?) 음악 마니아가 되기 위해 꽤나 안간힘을 썼다. <팝의 역사> 같은 책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기도 하고, '유튜브 공연영상 1000개 보기' 같은 목표를 세운 뒤 요약노트를 정리하기도 했다.

음악 마니아 PD들이 예전부터 행복하게 몸으로 경험해온 음악을, 나는 무슨 입시생처럼 글로 배우며 따라간 셈이었다. 지금도 음악은 나에게 즐거운 무언가라기 보다는 계속 의식적으로 공부해나가야 할 무언가라는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다.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만 해도, 처음엔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오롯이 즐기리라'는 생각보다는 '무대를 어떻게 설치했을까', '공연을 어떤 레퍼토리로 구성했을까' 등을 본다는 명목으로 예매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행복하게 내 가수의 공연을 즐기는 '아미'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받고 나오게 됐다. 사실 음악은 공부의 대상이 아닌, 저렇게 행복하게 즐기는 그 무엇일 텐데. 음악을 진짜로 즐겨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면서, 진짜로 즐거운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 내 옆에는, 언젠가 구입한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장>이라는 책이 놓여 있다. 이 책을 또 밑줄 그으며 읽기 전에, 진짜 좋아하는 음악과 가수에 순수하게 열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부터 뒤늦게나마 느껴보고 싶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1001번도 넘게 들었을 '아미'들과 같은 마음 말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반복해서 들었던 이승환 4집부터 다시 꺼내 들어 봐야겠다.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허항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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