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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만 씁쓸한 '대한제국의 미술'

▲ 최근 KBS 에서 다뤘던 여성용 문갑.

[PD저널=이은미 KBS PD] <TV쇼 진품명품> 연출을 맡았을 때 처음 보자마자 반한 고미술 의뢰품이 있었다. 190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1m가 되지 않는 여성용 문갑이었다.

문갑의 뒷면의 빗장을 풀고 힘껏 밀면 책상이 되고, 뚜껑을 열면 화장대가 되는 것이 마치 트랜스포머의 로봇 같았다. 서랍장 문 안에 또 문이 숨어있고, 자물쇠도 눈에 안 띄게 숨겨놔서 보면 볼수록 얘기꺼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주된 재료인 나무의 결이 문갑 표면을 화려하게 보이게 했고, 얇은 자개들이 과하지 않게 장식돼 미적으로도 훌륭했다.

<진품명품>에서 다루면, 뭔가 재밌는 방송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이전부터 하려고 정했던 아이템을 미루고, 이 문갑을 새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녹화를 준비하려고 논문을 찾아보고 자문을 구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 문갑은 조선의 전통가구 형태에 일본의 양식을 덧대어 여러 가지 기능을 하도록 제작한 ‘화양가구’였다.

화양가구는 순수 예술품이기보다는 당시 서민계층의 미술 소비욕구가 늘어나면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제작한 상품에 가깝다. 대한제국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궁중미술이 쇠퇴하고, 조선 황실이 설립한 한성미술제작소도 일본인들 손에 넘어갔던 상황을 알게 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다루다보면 화양가구가 미화되지는 않을지, 짧은 방송시간 내에 그 당시 미술계 상황을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첫눈에 반한 의뢰품에 실망감이 생기고,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이리도 없다니’ 하며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되도록 이 아이템은 ‘짧게 치고 빠지자’는 마음으로 대본을 구성하고, 그렇게 연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설이 다가왔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전시를 설까지 진행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오가느라 연휴 마지막 날은 쉬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의 아이템’이었던 화양가구도 생각나고, 그 시대 미술을 어떤 시각으로 전시했을지 궁금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다. 입장료 무료에 전시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덕수궁 미술관은 내가 가 본 이래로 가장 관람객이 붐볐다.

전시는 조선 말기 황실의 미술품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고종과순종의 초상화와 사진들도 꽤 있었고, 나라에서 인정한 서화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전시 작품들은 <진품명품>에서 시청자들이 의뢰하는 유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요이거나 궁중회화 위주이다 보니 도자기며 그림들의 수준이 보물급이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전시된 사찰의 불화나 연회를 그린 병풍에 담긴 일본 제복을 입은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불편했다. 도슨트가 일본 의상이 아니고, 대한제국의 옷이라고 무늬의 상징성을 짚어가며 설명해주긴 했으나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굳이 ‘이 의복은 대한의 의복입니다’ 부연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한편으로는 예술품을 예술로 감상하지 못하고 애국심 내지는 시쳇말로 ‘국뽕’ 감성에 젖는 내가 촌스럽게도 느껴졌다.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심신을 달래러 미술관에 왔는데, 작품들을 보고 속상한 역사를 떠올려야 하니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최고의 스트레스 유발 작품은 2층 전시실에 있는 대한제국 황실의 사진과 해외 일간지에 실린 삽화들이었다. 사진기가 들어오면서, 왕의 초상화 ‘어진’은 사진으로 대체됐다. 궁중의 화가 김규진, 김은호는 그림도 그리지만, 황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에 정착하면서 이와타 카나에, 무라카미 텐신 같은 어용 사진사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조선의 낙후된 부분을 부각시켜 촬영했고, 일본이 들어온 이후 근대화했다는 식의 이미지를 생산해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본국으로 전송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진, 아직도 유통되는 조선의 이미지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실물 사진으로 마주한 대한제국의 모습은 생각보다 충격이었다. 해외에서 온 작품도 많고 화려한 왕실의 유물들이 많았지만, 유독 사진 전시실에 관람객이 붐볐다. 다들 사진을 보고 설명판을 읽느라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한숨이 섞인 모녀 관람객의 대화도 간간히 들렸다.

그 옆에는 해외의 일간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에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이 컬러 삽화로 그려져 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지는 모습이 중앙에 크게 부각되어 마치 피해자인 듯한 느낌을 주고, 안중근 의사가 체포되는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다. 다른 사진이나 삽화들 역시 일본 중심의 시각에서 다뤄진 것들이 많았다. 얇은 종이 신문에 컬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가도, 그 내용을 보고 나면 씁쓸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해설이 끝나고, 도슨트가 한마디 덧붙였다.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미술사이고 우리 스스로 노력한 부분들이 있으니, 너무 외면하지 말자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화양가구 문갑을 프로그램 아이템으로 다룰 때의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다수가 대한제국의 미술을 불편해한다는 동질감을 확인하자 오히려 안심이 됐다.

여전히 대한제국의 미술은 불편하다. 예술 작품으로 보기에는 분노와 슬픔과 원망이 뒤섞여 마음 편히 감상할 수가 없다. 당시 미술계에는 친일활동이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그 흔적은 미술계 곳곳에 남아있다. 국내 미술의 발전을 바라는 입장에서 작품을 순수하게 볼 것이냐, 역사의식을 갖고 볼 것이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최근 미술관에서 우연히 2014년 4월 16일을 기리는 설치미술을, 재미로 읽을 요량이던 소설책에선 1996년 연세대 사태와 용산참사와 마주했다. 가까운 역사를 담은 예술 작품들을 접할 때의 불편함은 배가 된다. 속상하고, 답답하다. 백여 년 전 골동품을 갖고 왜 호들갑이냐고 하기엔, 예술작품이 담고 있는 사건들이 전시장 밖으로 나와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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