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옆자리
상태바
여왕의 옆자리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권력을 향한 여성들의 사투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19.02.28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전쟁 중이었다. 말버러 공작은 전장에 나가 있는 중에 말버러 공작부인인 앤 여왕의 오랜 친구인 사라가 국정의 많은 부분을 처리하고 있는 때였다.

앤 여왕은 모든 일들에 대해 사라의 의견을 물었고 사라와 함께 하고자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외빈을 맞으러 나가는 앤 여왕에게 사라는 서슴없이 직언을 날린다. 오소리 같다고. 그 모양을 하고 외국의 손님을 맞겠느냐고. 일은 자신에게 맡기고 방으로 돌아가라고. 시무룩해진 앤 여왕은 사라의 말대로 방으로 돌아가면서 애꿎은 시종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앤 여왕에게는 사라뿐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가 된 이후 사라는 앤 여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점검하고, 보살펴 왔다. 그런 만큼 사라가 가진 권력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다. 여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라와 앤 여왕의 앞에 젊은 여자 하나가 나타난다. 사라의 사촌인 아비가일.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뒤 사라를 찾아온 아비가일은 곧 머리를 굴려 사라의 시녀로 들어가고 곧 앤 여왕의 곁에 바싹 다가선다.

이제, 앤 여왕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라와 앤 여왕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아비가일의 싸움이 시작된다.

앤 여왕은 힘겹고 슬픈 생을 살아갔다. 스튜어트 왕가의 마지막 군주. 하지만 허약한 체질과 만성 질병 그리고 18번 임신을 했지만 다섯 아이만 살아서 태어났고 그 중 한 아기만이 유아기를 넘겼다고 하니 그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17명의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 방에서 17마리의 토끼를 길렀다는 말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 방을 돌아다니는 토끼들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 토끼(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런 사정으로 앤 여왕은 각료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고 의존했는데 그 중에서 사라 말버러는 여왕의 총애를 받는, 각료‧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영화는 서늘하고 묵직한 기운이 감돈다. 권력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려고 저렇게 기를 쓰는지.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모든 계략을 쥐어 짜내면서 사라와 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아비가일의 모습은 섬뜩하다.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실제의 얼굴이 상당히 다른 사람이 얼마나 무섭고 무자비한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야망을 펼치기 위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앤 여왕을 사이에 두고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라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아비가일의 대립을 보여준 영화는 결국 아비가일의 민낯을 슬쩍 보여주면서 진심을 일부 가진 자와 진심을 전혀 갖지 않은 자의 차이를 드러낸다.(그 충격은 앤 여왕의 표정에 드러난다.)

사라는 앤 여왕의 유일한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단지 권력을 갖기 위해 앤 여왕의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그녀의 편지에 쓰인 ‘당신의 친구 사라’라는 말은 감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여왕에게 오소리 같다는 직언을 날리고 여왕의 집무를 대신하는 사라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의 종반부로 갈수록 사라의 진심을 알게 된다.

아비가일을 어떠한가. 예쁘고 순진한 얼굴로 피해자인양 눈물로 호소하지만 그 표정을 짓기 바로 전에 그녀가 행하는 행동들을 목도하면 더 이상 그녀를 믿을 수 없다.

이런 얼굴에 우리는 얼마나 속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얼굴들은 우리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 것일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화면 자체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로우 앵글에 잡힌 얼굴들은 불편하고 기괴하며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의도적인 광각 촬영 장면들은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렇게 몰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앵글은 처음엔 사라에게 향하다가 점차 아비가일을 비춘다.

이미 <송곳니>, <랍스터>, <킬링 디어> 등의 전작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번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내세워 인간의 욕망과 마음과 진심과 거짓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