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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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은 ‘문화’다
  • 최상일 MBC 라디오본부 부장
  • 승인 2004.01.1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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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대통령의 ‘국민소득 2만불‘론이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들은 탓인지 요즘은 국민소득의 증대를 거론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계산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몇만 불이 되든 그것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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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국민소득 산출의 토대인 국민총생산이란 맹목적으로 모든 소득을 더한 것이므로 허수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이를 복구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은 따지지 않고, 사고로 인해 정비업소나 부품업체, 병원이나 장의사가 벌어들이는 소득만 계산하는 것이 국민총생산 개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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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수량주의의 허와 실은 방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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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케이블방송이다 위성방송이다 해서 tv방송채널은 이미 200개를 넘어섰지만 사람들이 tv를 시청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방송을 통해 얻는 정신적 만족도 역시 점점 줄어드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드라마 ‘대장금’을 보는 감동이 예전에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을 듣는 감동만 할까? 채널이 늘어난 만큼 사람들의 기대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채널의 증대가 그만큼 사람들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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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들까지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나 세계 최고라는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도 사람들의 복지를 그만큼 증대시킨 것같지 않다. 휴대전화로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전화를 할 수 있게 된 만큼 일과 스트레스는 많아졌고, 그 대가로 지불할 적지 않은 전화요금을 내기 위해 모두들 돈을 더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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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통신망으로 인한 폐해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 겪는 일이다. 꼭 필요한 정보는 찾기 어렵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쓰레기같은 정보는 원하지 않아도 넘친다. 통신을 이용한 범죄도 문제이고 통신 속도에 비례해 심화되는 정보의 편중 현상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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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방송이나 통신은, 그 목적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더 이상 그 용량을 확대시킬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방송·정보 채널은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이 시점에서 제대로 된 정부기관이라면 더 이상 방송·통신의 채널을 확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방송프로그램과 정보가 많이 생산돼 모든 사람들에게 부작용없이 골고루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보통신산업부’가 아니라 ‘정보통신부’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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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의 방송·통신 정책은 극도의 성장주의적 산업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경제분야에서는 이미 맹목적 성장주의의 허점을 깨달은 것같은데도 방송 통신분야는 아랑곳 없다. 오히려 침체된 경제를 방송·통신 산업을 통해 만회하려는 정책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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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재벌그룹의 반도체회사 사장이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그 정통부가 방송사와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산업경쟁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문제점 투성이의 미국식 dtv 전송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독과점으로 거대해진 통신회사에 또 다시 특혜 시비가 있는 위성방송 서비스를 허가하고 있다. 한 나라의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기업들보다 앞장서서 방송·통신 분야를 이토록 혼란스러운 돈벌이판으로 만들어가는 경우가 우리나라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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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통신은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다. 방송·통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해 방송·통신이 존재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방송·통신이 산업적 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 기본만은 지켜져야 한다. 허수에 불과한 국민소득의 개념이 무의미한 것처럼 맹목적인 양적 팽창만을 의미하는 산업경쟁력이라는 개념도 적어도 방송·통신 분야에서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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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방송·통신은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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