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4.23 화 18:39

연인의 얼굴

영화 '아사코', 쌍둥이처럼 닮은 두 남자를 사랑하는 여주인공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l승인2019.03.29 12:36:4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영화 <아사코>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신지혜의 영화음악>진행)] 그 남자는 그랬다. 팡팡 터져대며 즉각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폭죽처럼, 그 남자는 그렇게 아사코의 마음에 쑥 들어와 버렸다. 바쿠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헐렁한 옷차림, 무심한 헤어스타일, 꾸밈없이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 바쿠의 모든 것이 아사코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고, 아사코는 바쿠를 깊이 사랑하게 됐다.

또 다른 그 남자는 그랬다. 시간이 흘러도 온기를 담고 있는 보온병의 커피처럼, 아사코의 마음에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 버렸다. 료헤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깔끔한 옷차림, 단정한 헤어스타일, 예의바르고 진중한 행동. 료헤이의 모든 것이 아사코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아사코가 바쿠를 사랑하게 된 것은 순식간이었고, 료헤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을 걸렸다. 두 남자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당연하게도 서로의 존재는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시공간에서 살아갔지만.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바쿠와 꼭 닮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아사코의 마음이 완강한 거부에서 진실한 사랑으로 흘러가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써머스비>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잭 써머스비. 거친 성격에 말썽만 부리던 그 남자는 남북전쟁에 나갔고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의 아내는 늘 억압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써머스비가 사라지고 점차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써머스비가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써머스비는 이전과 다르다. 똑같은 얼굴을 가진 그이지만 이전의 괴팍함은 사라지고 착실하고 다정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 남자는 정말 써머스비일까? 잭 써머스비라는 사람에 대해 계속 혼란스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다.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아내에게 ‘돌아온’ 남자가 ‘좋은 써머스비’라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가면의 정사>라는 영화도 떠오른다. 성공한 사업가와 그의 아내. 어느 날 밤, 큰 사고가 나고 아내는 멀쩡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엉망이 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가지고 여자는 남편의 사진을 제공해 얼굴 복원 수술을 한다.

기적처럼 남편의 얼굴과 몸은 돌아오지만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내는 그의 곁을 지키며 헌신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서 불륜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밝혀진 충격적이고 슬픈 결말은, 사랑에 빠진 남녀가 여자의 남편을 살해하고 돌아오던 밤 사고가 난 것이고 남편의 얼굴로 복원된 그 남자가 바로 남편의 동업자이자 아내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두 영화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정체성 때문이리라. 써머스비는 전장으로 떠난 그 써머스비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수술로 얼굴을 돌려받은 남자는 기억나지 않은 자기자신과 남들이 ‘당신은 바로 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상황 사이에서 자신을 누구라고 인지할 수 있었을까. 물론 아사코가 사랑한 남자(들)은 다른 사람이다. 똑같은 외모를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 딴 판인 두 사람이다.

하지만 아사코가 료헤이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바쿠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은 끊임없이 맴돌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정체성은 외모-얼굴이라는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료헤이가 바쿠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영화 <아사코>의 후반부는 우리에게 그다지 고민스럽지 않았을 수 있다. 바쿠와 료헤이가 마치 도플갱어처럼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아사코와 함께 흔들리고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이니.

영화 <아사코>는 그래서 단순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얼굴’임을 이야기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영화는 묻는다.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안수영l편집인: 안수영l청소년보호책임자: 안수영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안수영
Copyright © 2019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