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실려온 '마술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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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실려온 '마술피리'
모짜르트 대표곡에 동화같은 서사로 몰입감 높여
  • 이현주 국악방송 PD
  • 승인 2019.04.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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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현주 국악방송 PD] ‘얄궂은 운명일세 사랑이 뭐 길래 원수도 못 보는 눈이라면, 차라리 생기지나 말 것을 눈이 멀었다고 사랑조차 멀었든가‘

모차르트의 대표작인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고 나오다 문득 생각이 난 가사였다. 한국의 남도 민요 중 ‘흥타령’ 대목인데 임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정서가 노래 전반에 담겨있다.

노래 초반에는 ‘이 모든 게 꿈’이라며 슬픈 상황을 부정하듯 한스럽고도 조용하게 시작을 하지만 점차 슬픔이 고조된다. 여성적 어조가 강해서 직접적인 원망보다는 상황을 한탄하며 속수무책으로 임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게 아쉽기도 한 노래다. 그런데 뮤지컬 마술피리를 보고는 왜 ‘흥타령’이 떠올랐을까.

고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음악선생님께서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이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성악을 하는 언니가 있어서 집에 가면 클래식 음악이 모든 행동의 배경음악이 될 정도로 24시간 클래식을 듣곤 하던 나로서는 서양음악이 익숙한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의 여왕’이 질러 내는 고음역은 ‘저게 정말 사람이 내는 소리일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소리를 연마해서 득음을 하고 진성으로 토해내듯 부르는 우리네 판소리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소리였고 그래서 우리 민요나 판소리와 서양음악과는 앞으로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양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고 나서 한국 전통 음악 ‘흥타령’을 떠올린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디서 그 둘의 공통점을 찾았을까. 아마 이맘때쯤 감상한 공연 때문이라고 추정은 된다.

2012년 봄, 꽃이 피듯 사랑도 피어나면 좋았을 봄날 나는 당시에 이별을 했고 화창한 봄날과 대비되는 심란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잡아보고자 혼자서 공연을 감상한 적이 있다. 국악 그룹 ‘앙상블 시나위’가 마련한 판소리 무대 ‘시간 속으로’라는 공연이었고, 판소리의 여러 눈 대목과 함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눈먼 사랑’(‘흥타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노래)을 듣고선 완전히 매료됐다.

‘흥타령’ 후반부에는 ‘춘삼월 봄바람에 꽃송이이마다 벌, 나비 찾아들고’라는 가사가 나온다. 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맘때 듣기 좋은 음악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남쪽에서부터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화창한 봄날에 알게 된 곡이라 지금도 봄만 되면 이 노래가 생각이 난다.

매화며 진달래며 봄꽃들이 앞다퉈가며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땅도 따사로운 해를 받으며 말랑말랑해지는 어느 봄날, 노래에 취해 무한 반복으로 이 곡만 고집스럽게 들었다. 마치 실연당한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한껏 감성에 취해서는 한 곡만 재생해 들으며 남들보다 더디게 봄을 맞이했다.

▲ 오페라 <마술피리>는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이현주 PD

그렇게 여러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고 근 10년여 만에 다시 보게 된 ‘마술피리’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만 감상하던 때와 달리 이번엔 극 전체를 전부 감상했으니 부족한 문화예술 감성지수가 조금이나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내적인 부족함을 느끼던 시기라 이번에 접하게 된 ‘마술피리’가 특별하기도 했다.

마술피리 하나를 들고 납치된 공주를 구하러 가는 동화 같은 서사가 동심을 찾아주었고 한편으로는 사회에 나와서는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사는 어른들에게 ‘잠시 풀어져도 돼. 긴장 풀고 음악을 느껴보자’며 어르고 달래주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코믹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새잡이 ‘파파게노’가 부럽게도 느껴졌다. 짝을 못 찾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며 외치는 파파게노를 보면서, 내가 반드시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집념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거 같아서 슬펐고 또 그런 대상이 물질이 아닌 사랑일 수 있던 한때의 낭만적인 감수성도 더는 찾을 수 없게 된 거 같아서 슬펐다.

10여년이 흘러 다시 보게 된 ‘밤의 여왕 아리아’와 7년 전에 감상한 ‘흥타령’을 통해 새삼 음악이 지닌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해 천사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이별 후의 감정을 극복하게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효과를 얻게도 하고, 잃어버린 감수성을 다시 되찾도록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오페라 ‘마술피리’에서는 소박한 가곡과 익살스러운 민요 그리고 화려한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 등이 고루 등장하는데 덕분에 음악이 조성하는 분위기나 음악적인 연출 기법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시간이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PD이지만 내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 이번과 같은 값진 공연을 살면서 열개만이라도 완벽히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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