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 자극한 YTN '김학의 동영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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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 자극한 YTN '김학의 동영상' 보도
제보 목적 글에 동영상 내용 지나치게 묘사.. 댓글엔 "동영상 국민도 보자"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04.0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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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온라인을 통해 공유된 '멈춰요 운동' 경고장 ⓒ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PD저널=이미나 기자] 얼마 전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이미지 파일이 화제를 모았다. 정준영 씨의 불법 촬영물 유포 사건에서, 이른바 '지라시'를 통해 피해자의 신상을 추측하거나 불법 촬영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관음증을 부추기는 언론의 보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YTN이 지난 7일 자사 홈페이지 '와이파일' 코너에 게재한 <'김학의 동영상' 실제로 봤더니...'내부자들'은 현실이었다>는 글의 의도와 다르게 동영상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저희는 취재 과정에서 '김학의 동영상'을 입수했습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는 두 문단을 할애해 입수한 '동영상'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한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부르는 노래를 바로 알기 어려워 "멜로디로 노래 제목을 맞히는 앱을 다운받"아 "남성이 부르는 멜로디를 따라 불렀더니 제목이 떴"다며 노래의 제목과 가사도 함께 소개했다.

여기에 동영상엔 "여러 버전이 있"고, "내용은 하나인데 화질과 길이가 조금씩 다르"다는 등 관련된 정보와, "보고 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감상평도 곁들였다.

취재기자는 서문과 말미에 자신의 연락처와 함께 '제보를 바란다'고 적었다. YTN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을 집중 취재하는 전담팀을 꾸렸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러나 본문 마지막 세 문단을 빼고는 온통 동영상의 내용을 묘사하거나 동영상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데 할애된 기사가 실제 작성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성범죄 증거로 거론되고 있는 '김학의 동영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고, 읽는 이들에게 불필요한 흥미만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도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지난달 23일 태국 출국을 시도하다 출국금지된 김학의 전 차관 ⓒ JTBC

YTN 기사를 받아쓴 <이데일리>와 <세계일보>도 "'김학의 동영상'의 내용이 공개됐다"며 본문의 선정적인 대목만을 강조했다.

YTN 기사에도 "동영상..국민들도 좀 보자", "보나마나 몇 년 뒤에는 야동사이트에 돌아다니겠군"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내용을 굳이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나요"라는 우려 섞인 반응 밑에는 "자극적으로 묘사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요"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언론이 '김학의 성범죄 의혹'과 관련해 조명해야 할 게 동영상의 내용은 무엇인지, 길이는 얼마나 짧고 긴지, 화질은 얼마나 좋고 나쁜지가 아니다. 실재했던 범죄가 권력의 자기장 안에서 은폐‧축소되었던 것은 아닌지 밝혀내는 것, 나아가 여성의 성(性)이 대가처럼 오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해석하여 설명하는 일이야 말로 언론의 책무다.

일련의 불법촬영물 관련 사건으로 만연해 있던 '사회적 관음증'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김학의 동영상'은 성범죄의 증거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뿌리 깊은 '성 착취' 문화의 단면을 드러낸다. 

YTN 측은 '김학의 동영상' 기사와 관련해 “최근 뇌물이나 직권 남용 등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데다, 성범죄 혐의 적용에 공소시효가 다가오면서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취재기자가 기사를 작성한 것”이라며 “묘사 부분에 대한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고, 내부적으로 좀 더 고민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 이번에는 해결되기를 바라는 의식이 있었다면 '김학의 동영상'이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게끔 보도하지 말았어야 했다. 목적이 정당했다고 해도 이건 '실패한 방식'이다."(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성범죄를 대하는 언론의 신중한 태도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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