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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면 터지는 연예인 범죄에 가려진 이름

‘버닝썬 유착 의혹’ ‘김학의‧장자연 사건’ 수사 지지부진...포털엔 줄줄이 연예인 수사 소식만 허항 MBC PDl승인2019.04.10 1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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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PD저널=허항 MBC PD] 버닝썬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클럽 내 마약 유통과 불법 영상 유포, 경찰과 클럽과의 유착비리 등의 이슈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올라왔다. 이와 맞물려 유야무야 묻힐 분위기였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범죄 의혹과 ‘장자연 사건’ 재조사도 탄력을 받는 듯 했다.

MBC <PD수첩>이 때마침 <조선일보> 일가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면서 권력층에 대한 공분이 모아졌다. 대통령까지 이 사건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언급했을 즈음에는, 사이다처럼 진실이 밝혀질 날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폭로들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지 두어 달 쯤 된 지금, 판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더뎌 보인다. 김학의 전 차관은 출국을 기도하다 붙잡히기까지 했는데, 그 후 수사에 속도를 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장자연 사건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는 배우 윤지오 씨는 위급 상황에도 9시간동안 경찰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 동안 <조선일보> 일가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 지면에서 스멀스멀 자취를 감췄다.

이 모든 것이 지지부진한 와중에 활발하게 업데이트되는 소식이 있다. 언론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승리를 파헤치나 싶더니, 그의 친구 정준영이 단톡방에 불법 영상을 유포했다는 소식을 앞다퉈 톱뉴스로 내보냈다. 뒤이어 그 단톡방에 어떤 연예인이 있는지 맞혀보라는 식의 보도가 며칠 내내 이어졌다.

정준영의 또다른 단톡방에 있던 연예인들이 내기골프를 했다는 소식이 지상파 9시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한 방송인이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보도로 포털사이트가 도배되어 있고, 댓글창은 마약을 투약했다는 또 다른 연예인 A씨의 신상을 파헤치느라 바쁘다.

갑자기 세월호 참사가 있던 즈음의 편집실이 생각난다. 당시 어떤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서브 PD였는데, 프로그램 방송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당연히 그 주 예능 프로그램들은 모두 스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방송 전날 갑자기 방송 송출을 강행하라는 ‘지시’가 편집실로 내려왔다. 풍악을 울리는 음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면 방송을 내도 괜찮다는 것이 이유였다.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뉴스는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을 때였다.

프로그램 메인PD 선배와 나는 강력히 반대했지만, ‘불통’으로 점철되었던 시절이었다. 결국 최대한 웃음기를 걷어내고 웃음 효과도 제거한, 기이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방송 후 프로그램과 제작진은 당연히 네티즌들의 악플 폭탄을 받았지만, 세월호 뉴스로 가득 차있던 포털사이트 뉴스면은, 예능 프로그램 기사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는 데 성공했다.

예능 프로그램, 연예인은 대중이 가장 쉽고 친근하게 화제에 올릴 수 있는 존재다. 정치‧경제 뉴스보다 대중들의 반응 속도가 빠른 것이 연예 뉴스다. 정말 심각한 국가적 이슈가 터져도 톱 연예인의 열애설이 불거지면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세월호 참사 당시 완성된 방송 테이프를 주조정실로 보내면서 참담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이용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때만큼은 내가 웃긴 프로그램을 만드는 예능PD가 아닌,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눈들을 잠시나마 돌리는 데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재미없게 나가면 창피할까봐 끝까지 만듦새를 이리저리 매만지던 기분은 아직도 묘하게 남아있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들이 그 때의 상황처럼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하루에 한명씩 나오는 것 같은 ‘연예인’의 이름에 김학의, 방용훈, 버닝썬 그 밖에 진짜 밝혀야할 진실들이 자꾸 가려진다는 느낌이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예인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끌벅적한 연예뉴스가 만들고 있는 ‘연막’이 예능PD인 나도 오늘따라 너무나 답답하다.   


허항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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