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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년 오롯이 기록한 '416기록단'

'사회적 참사 특조위' 세월호 DVR 진상규명 이끌어낸 416기록단의 영상 김영미 독립PDl승인2019.04.16 11: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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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나흘 앞둔 12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영미 독립PD] 지난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 초청 받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단편 영화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의 부재를 다룬 영화다. 같은 해 ‘뉴욕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OC NYC)’에서도 대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며칠 전 열린 ‘2019 세계보도사진(World Press Photo)’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부분에서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영화는 이승준 독립PD가 연출하고 416기록단이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416기록단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바로 다음날 날아온 한통의 문자메시지로 시작한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진도로 가자.”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박봉남PD(416기록단 단장).

그는 “어떤 '작품'을 만들자는 목적도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것이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진상을 밝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되도록이면 많은 카메라가, 가능한 많은 것을 기록해서 남겨야 한다. 정부와 언론사로부터 자유로운 우리만이 할 수 있다”고 당시 독립PD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진도에, 팽목항에 독립PD 십여명이 모여 들었다. 이들이 바로 416기록단(박봉남 PD외 4명). 박 PD는 기록단의 활동과 운영을 위해 적금을 깨고 사비로 수천만원을 내놨다.

그렇게 기록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언론을 믿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지상파와 주요 언론사는 물론 카메라를 든 사람은 모두 끌어 내렸다. 독립PD들이 가족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정부와 언론에 자유로운 독립PD들이다. 본대로 촬영하고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가족들에게 독립PD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했다.

가족들은 서서히 독립PD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다른 언론사도 접근 못하는 상황에도 유가족들은 “여기 독립PD들의 카메라가 우리 유가족의 카메라”라고 말하며 독립PD들의 촬영을 허락했다. 유일하게 바지선에 올라 시신 인양을 직접 촬영한 것도 독립PD들의 카메라였다.

당시 우리나라에 이름 난 모든 언론사가 세월호의 진실을 외면할 때 그들은 묵묵히 기록만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놓치면 역사의 한순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장면이 나중에 진상 규명에 치명타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카메라를 놓을수가 없었다.급박했던 사고 현장에서 서로 역할을 나눠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며 세월호 가족들 옆을 지켰다.

현장에 다른 프로그램 때문에 나와 있던 다른 독립PD들도 십시일반 416기록단을 도왔다. 밥이라도 한 끼 나누고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가족들이 상주하는 진도 체육관 안에서 독립PD들은 가족들과 먹고 자면서 촬영했다. 박정남 PD는 “그때 체육관에서 맡았던 냄새와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절박함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말한다. 

▲ ‘4.16 기록단’과 <뉴스타파>가 공동제작한 프로그램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화면 갈무리.

시간이 지나며 독립PD들에게 재정적인 문제가 닥쳤다. 한 달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는 독립PD들에게는 당연한 문제다. 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PD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사고 현장을 지키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순번을 정해 한 사람씩 현장에 남아 계속 촬영하고 나머지 PD들이 일을 하고 생활비를 몰아주면서 버텼다. 그 소식을 들은 한국PD연합회도 성금을 지원했고 현장에 가지 못한 방송사 소속 PD들도 개별적으로 혹은 협회 이름으로 도왔다.

그렇게 세월호 가족 옆에는 지난 5년간 최소한 한 명의 독립PD와 카메라가 붙어 있었다. 언젠가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진상 규명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416 기록단은 이 모든 기록은 세월호 유가족 협의회에 넘겼다. 한경수 PD는 “우리는 뭔가 결과물을 만들기 보다 이 순간을 기록해 공공의 영역으로 넘기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그래서 모든 기록을 대가없이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현재 416기록단의 기록은 사회적 참사 특조위의 진상규명 활동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세월호 CCTV DVR(디지털영상저장장치) 관련 조사내용 중간발표'에서 해군이 선내에서 수거했다고 주장해온 DVR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이걸 밝힐 수 있었던 것도 416기록단의 영상 덕분이었다. 그때 해군이 수거한 DVR과 검찰이 보관하고 있는 DVR의 형체가 다르다는 것을 기록단의 촬영영상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당시 정부의 세월호 은폐 감시가 심해 어느 방송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방송 하지 못했다. 416기록단의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된 곳은 <뉴스타파>였다. <뉴스타파> 세월호 100일 특집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가 처음으로 세월호 사건을 집중 조명한 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언론인권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야 지상파와 다른 방송사들에서 세월호의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416기록단의 기록은 여러 방송에 통해 공개됐다. KBS <추적60분> ‘세월호 인양의 진실’ JTBC <이규현의 스포트라이트> ‘국가의 배신, 우리의 수색은 끝나지 않았다’ 등 총 9편이 416기록단의 영상을 활용했다. 만약 사고 당시 독립PD들이 416기록단을 만들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방송들이었다.

416기록단은 아니지만 최근 다른 독립PD의 세월호 참사 기록도 조명받고 있다. 복진오 PD가 만든 MBC 다큐스페셜 로그북-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는 세월호 참사 당시 잠수사들의 고뇌와 아픔을 담았다. 이 프로그램은 제12회 한국독립PD대상, 한국PD대상 독립제작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는 “처음 바지선에 올라갔을 때는 촬영할 엄두도 못할 참혹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수습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어디 쉽겠는가. 그러나 기록이기 때문에 일단 촬영했다”라고 말했다.

벌써 세월호 참사 5주기이다. 이제는 세월호 방송도 아무 제재 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사는 몇 주기 혹은 세월호가 큰 이슈가 됐을 때만 세월호를 조명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고 진상규명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독립PD들은 기록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순간도 그들은 유가족들 옆에 카메라를 들고 있다.


김영미 독립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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