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지역방송사, 과감한 유튜브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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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MBC 유튜브 콘텐츠 '바다부러', '지역밀착 젊은르포'로 지역사회에 반향

▲ 여수MBC가 지난 2월 처음으로 공개한 유튜브 콘텐츠 <바다부러>가 지역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PD저널=김미나 여수MBC PD] 8년. 독립PD로 살아온 그 시간들을 껴안고 지난겨울, 나는 전라선의 끝, 여수에 내렸다. ‘워라벨’이란 말조차 호사인 생활에 지쳐있었고 무엇보다 육십 살까지 PD이고 싶었다. 그렇게 발을 디딘 나의 첫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진짜 위기”다.

예상은 했지만 지역사의 사정은 훨씬 열악했다. 반 토막 난 광고 수익에 기댈 수 없게 된 지는 이미 오래. 각 사별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민이 깊었다. 그나마 여수는 적자 폭이 적은 축이지만 그건 딱 그만큼의 작은 위안일 뿐. 등 돌린 시청자들을 불러 세울 방법은 까마득한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현실은 너무 가까웠다. 많은 선배들이 열정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여느 조직이 그러하듯 타성에 젖은 문화도 두터웠다. 그렇게 시작하는 이의 뜨거운 마음과 긴장 그리고 냉담한 현실이 뒤섞인 겨울이 가고 있었다.

칼바람을 뚫고, 원주에 MBC 신입사원 60여명이 모였다. 2018 MBC 새내기 모임. MBC노조 파업 전후로 거의 모든 지역MBC가 공개채용을 했다. 누군가는 5년, 7년 혹은 10년만의 막내였다. 그 막내들을 위해 선배들이 마련해 준 5일의 귀중한 시간. 회사 뒷담화와 미래에 대한 낙담, 무엇보다 우리가 바꿔나갈 지역MBC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변화’가 피부로 와 닿았다. 지역MBC사에 전무후무한 신입사원 모임 자체가 곧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모임이 바스락 시들어가던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나 재작년 파업 때 입사해 일 년을 보낸 17사번들은 그야말로 타는 목마름으로 변화를 찾고 있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에 밀착한 시사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우리 지역 시군의원들을 탈탈 털어보자” 한창 예천군의회의 해외연수 문제로 시끄럽던 때였다.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과 재산신고 내역, 겸직 여부, 해외연수 보고서와 연수비용을 뜯어보았다.

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알기 쉽게 땅과 건물 등으로 나눠 순위를 매겼다. 또한 당선 전후로 재산 증감액도 뽑았다. 7개월 사이에 재산이 10억원 감소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7억여 원 증가한 의원도 있었다. 한 달에 1억씩 증가한 셈이다. 여행사 대표를 겸직하는 시의원은 본인의 회사를 통해 동료 의원들과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현행법상 기초의원의 겸직은 허용되지만 이를 통해 직무와 연관된 이윤을 취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유튜브로 시작해 틀을 갖춰 정규방송으로 가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다행히 여수MBC는 누적 조회수 1억뷰를 돌파할 만큼 유튜브 제작에 깨어있었다.

마지막까지 정해지지 않은 것이 콘텐츠 이름이었다. 각자 일을 마치고 늦게 모인 밤. 오늘은 기필코 제목을 정하자 했지만 눈앞에서 타닥타닥 굴이 익어갈 뿐이었다. ‘아따, 오메, 알릴랑게…’ 지역 색깔이 드러나면서도 파이팅 넘치고 쿨~~한 그런 이름이 필요했다. 그렇게 애꿎은 굴만 축내고(?) 있을 때 포장마차 천막 문에 큼지막한 글자가 시선을 잡았다. “필히 문 다다부러.” 거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아저씨의 음성이 지원되는 듯했다.

“딱 저런 ‘느낌적인 느낌’이면 좋겠는데……”

“그럼 껄쩍지근한 거 다 들이 받아불게 ‘바다부러’ 어때요?”

그렇게 본격 지역밀착 무식용감 젊은르뽀 <바다부러>가 시작됐다.

▲ 여수MBC가 지난 2월 첫공개한 유튜브 콘텐츠 <바다부러> 화면 갈무리.

1화가 3일 만에 1000뷰를 찍었다. 오픈빨(?)과 강요에 의한 문어발식 홍보(?)도 한 몫을 했겠지만 지역방송사 유튜브로는 꽤 높은 조회수였다. 해당 의원들을 찾아가 그 이유를 직접 묻는 <물어부러> 코너 반응도 좋았다. 업로드 다음날 시의원이 반론 요청을 하기도 했다. (1화 업로드 며칠 전 겸직을 사임한 시의원이었다). 허공에 대고 외치는 메아리는 아닌 것 같아 안도했고 그 어떤 피드백도 감사했다(서울에선 깨닫지 못한, 시청률 그래프와 온갖 댓글의 소중함이란!)

처음부터 가욋일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피디야 늘 시간과 잠을 쪼개며 사는 직업이지만 지역사의 PD는 생각보다 하는 일이 더 많았다. 인력이 없다보니 자막을 얹고 음악을 넣는 종편 작업도 PD 혼자 해내야 했다. 촬영에, 편집에 후반작업까지 하다보면 그저 방송만 쳐내기에도 빠듯했다. 그때그때 짬을 내 쪽회의를 이어갔고 여러 날의 야근을 더해 콘텐츠를 완성했다. 버거워도 해보자하고 시작했지만 힘에 부쳐 슬쩍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사내 반응은 둘로 갈렸다. ‘이런 콘텐츠를 기다렸다’와 ‘소는 누가 키우나’. 후자는 유튜브에 집중하는 회사 분위기를 꼬집으며 인력이 한정된 만큼 방송에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소 말고 닭도 말도 키워야 생존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소 키우는 사람’ 운운하는 것이 답답하다가도 소 키우는 일도 버거운 게 현실이라 나 또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작년 새내기 모임에서 만난 이들도 이런 고민을 토로했다. 전투적으로 뉴미디어 콘텐츠와 사업을 키워나가려는 회사와 구성원들의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 지역사의 현실이다.

잘 만들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바다부러>가 누군가의 이목을 조금이라도 끈다면 그것은 지역 지상파의 ‘유튜브 콘텐츠’이기 때문이고 나아가 ‘젊은 피’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어색한 지역 지상파와 유튜브의 동거 속에서 우리는 <바다부러>를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날 것의 지역 이야기를 하길 원했고 그 목마름이 유튜브를 만나 세상에 나왔다.

더 큰 프로그램, 더 큰 이슈, 더 큰 반향을 경험했지만 나에겐 지역에서 <바다부러>로 만든 아주 미세한 흔들림이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더 큰 원을 그려나가 지역MBC의 변화의 상징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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