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5.25 토 14:10

아버님의 영정사진

[뽕짝이 내게로 온날 43]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l승인2019.05.02 12:57:4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이석증으로 심하게 고생한 둘째 아들을 데리고 남편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이비인후과에 가는 길이었다. 자동차에 타자마자 아들은 “엄마, 은 원장님은 할아버지가 좋은가 봐요. 제가 병원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 안부를 물으시구요, 저더러 할아버지한테 사진 테크닉을 배우라고 늘 말씀하세요”라고 말했다.

은 원장이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이날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아들을 진료하던 은 원장은 아닌 게 아니라 진료를 마치고 비는 시간에 아버님 이야기를 꺼냈다. “영서야, 지금은 핸드폰이다 뭐다 해서 카메라가 많지만, 느네 할아버지가 그쪽 기술이 좋으신 분이야. 보정술이 전주에서 최고였어. 자주 찾아뵙고 할아버지한테 사진 찍는 거 배워라. 진짜 훌륭한 분이다!”

시아버님은 젊은 시절 전주시내 백화점 옆에서 큰 규모의 사진관을 운영했다고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사진관을 이용했던 시절이니 사사로운 증명사진부터 결혼사진 졸업사진 기념사진 등 수많은 추억이 아버님의 손길을 통해 기록으로 남았다. 손재주가 많은 아버님은 특히 보정을 잘해서 인기가 좋았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은 원장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은 진찰 의자에 앉아 나에게 거보라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나는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 드디어 치료가 끝나자 아들은 은 원장에게 “원장님, 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라고 말했고 은 원장은 금시초문이라며 깜작 놀라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아마도 친구들에게 제대로 부친의 부음을 전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허탈해하는 은 원장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가족들조차 실감 나지 않던 아버님의 부재(不在)를 의외의 장소에서 확인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있으니
즐거웠던 지난 날의 모든 추억이
내 가슴깊이 밀려들어요 
(중략)
이렇게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어머니 눈시울은 젖어있어요
아버지는 의자 하나 남겨 놓은채
지금 그 어디로 떠나셨나요 
여기 앉아서 나는 꿈을 키워왔어요
아버지의 체온 속에서 따스했던 말씀과
인자하신 미소를 언제나 생각했죠
그리울 때 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때 그 모습이 보일 듯 해요
(정수라 노래 / <아버지의 의자> 가사 중)

▲ ⓒ픽사베이

울릉도 출장길에 오른 남편은 일요일 오후 두시쯤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님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는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며 무슨 일인지 빨리 가 보라고 했다. 급히 두 아들과 시부모님 아파트에 도착하니 119 구급대원이 와 있었고 이미 숨을 거둔 지 한 시간쯤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방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계셨는데, 주무시듯 열반하셨다. 24시간 자석처럼 붙어 지내던 어머니조차 모르실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당뇨 합병으로 여러 차례 위급한 상황을 넘기셨고 시아버님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기력이 쇠약해져서 가족들의 걱정이 적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이별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장남인 남편은 울릉도 가는 배편에 있어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연락받고 모인 가족들과 하나씩 상황에 대처해 나갔다. 경찰과 검안의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해서 정작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됐다. 발인 절차와 방법까지 상의하고 나니 이미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었다.

아버님의 사인은 급성 심폐 부전증, 노환이었다. 황망한 가운데 아버님이 어머님 옆에서 주무시듯 편안하게 영면에 드셨다는 사실이 그나마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슬픔을 버티는 힘이 됐다. 제일 시급한 것이 영정사진이었다. 몇 년 전 찍은 가족사진에서 아버님 얼굴만 편집해서 확대하기로 했다. 가족사진은 아버님의 오랜 소원이었는데, 그해 찍은 사진이 유일한 가족사진이 됐다. 그날, 아버님은 내가 시집올 때 해드린 꽃분홍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셨다. 꽃분홍 한복을 입은 아버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 참 곱고 잘 생긴 얼굴이다.

아버님은 암굴 같은 사진관이 싫다고 하셔서 사진관을 접고 어머니와 5일장을 돌면서 장사를 했다.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TV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버님은 일찍부터 주유천하(周遊天下)하신 셈이다.

나는 두 분을 위해 ‘커플 룩’을 사드리곤 했다. 겨울에는 방한복을, 봄가을에는 개량한복을 샀는데 어느 해인가 부산 여행 때 누비 한복이 멋있기에 구해드린 적도 있다. 두 분이 ‘카플 룩’을 입고 손잡고 외출에 나서면 골목이 훤했다.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우리 며느리가 사줬어”라고 자랑하시곤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부모님이 예쁘게 입을 옷을 고를 때, 재미있었는데 아버님도 며느리가 사준 것을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영정사진에서도 며느리가 해드린 꽃 분홍 한복을 입고 계신다.

조화(弔花)와 조기(弔旗)가 들어오고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바람이 거센 울릉도에서 다행히 뭍으로 오는 배를 갈아타고 포항에서 대구로, 대전으로 익산으로, 어찌어찌 새벽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남편과 둘째 시동생, 셋째 시동생, 큰 아들이 상주가 되어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듬직한 네 명의 사내가 아버님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으니 모두들 아버님을 부러워했다. 널리 알리지 않았는데도 찾아오신 분들을 맞이하며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슬픈 마음이 크게 위로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마워서 더욱 눈물이 났다.

조문객들이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위로와 애도를 품고 오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도하는 사람, 별 말없이 손 한번 잡고 가는 사람, 눈인사만 건네는 사람 등 위로의 방식은 달라도 전해져 오는 마음은 감사와 감동으로 남았다. 우연히 마주친 문상객끼리 조우(遭遇)의 인연이 이어졌고 각계 인사가 찾아와서 신년하례회를 방불케 했다. 어떤 분은 바쁜 일정 가운데도 오랜 시간 머물면서 주위 분들과 어울렸는데 장례식장에서는 축제처럼 지내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월요일 오후 세시, 시신을 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장남에게 고인의 머리를 꼭 잡으라고 해서 남편이 그 일을 맡았다. 장의사 두 분이 한 과정을 진행할 때마다 의미를 설명하고 정성껏 절차를 진행했다. 유품으로 시계를 건넸다. 애써 슬픔을 누르던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시계는 남편이 영국 출장 때 공항에서 사 온 것이라고 했다. 아버님은 큰 아들이 사온 시계를 내내 몸에 지니고 계셨다. 어머니는 슬픔에 겨워하시다 끝내 지켜보지 못하고 자리를 뜨시고 아버님은 깨끗하게 목욕하시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으셨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 노래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 중)

화요일 오전 10시, 화장을 위해 전주 승화원으로 출발했다. 장례식장에서 승화원까지 20여분의 시간이 아버님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행이다. 아버님의 일터였던 사진관 옆을 지나고 평생 가족들의 울타리였던 태평동 집을 거쳐 아버님은 이승을 떠난다. 두 시간 남짓 화장을 한 후 유골함에 모셔 실외 봉안당에 봉안했다. 아버님은 답답한 것을 싫어하시는데 괜찮을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남쪽으로 볕이 환하게 들고 높이도 6층이어서 복사골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좋은 전망이었다.

지난 일요일까지 꽃샘추위가 드셌는데 어제오늘, 참 좋은 날씨라고 누군가 말했다.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따사롭다. 문상 와서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씀하시던 어르신이 떠오른다. “날도 따시고, 꽃도 피고, 참 좋은 날 가시네 잉~”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가사 일부>

어느 봄날, 주무시듯 홀연히 떠나신 아버님을 두고 사람들은 “마음공부 잘하신 분”이라고 부러워한다. 고통 없이 깔끔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복 중의 큰 복이려니와 남은 가족들에게 소중한 가족의 인연을 끈끈하게 이어주신 것이 아버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대사를 치르면서 흔한 잡음 한번 없이 원만하게 장례를 마친 가족들은 더욱 끈끈한 연대로 다져졌고 상심에 빠진 어머니를 보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느닷없는 이별에 애통하는 마음이 비할 수 없지만, 남은 가족들을 위해 더욱 건강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애도하는 법’을 제대로 보여주신 조문객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감사하고 좋은 인연을 정성껏 가꾸어 세상의 ‘따순 기운’을 북돋우자고 다짐해본다. 배호의 노래를 좋아하셨다는 아버님께 봄이 겨운 날, 노래 한곡 올리고자 한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 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 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 하며
눈물 젖어 불러 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 노래 /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안수영l편집인: 안수영l청소년보호책임자: 안수영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안수영
Copyright © 2019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