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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3 17:25
  • 수정 2019.05.06 12:08

"'풍정라디오'의 기적, 2022년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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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풍정라디오' 박원달 PD "마을 주민들 통해 미디어 치유 기능 실감"

▲ TBC <풍정라디오> 스틸컷 ⓒ TBC

[PD저널=이미나 기자] 박원달 TBC PD는 2년째 제작하고 있는 <풍정라디오>를 '인생작'이라고 말한다. 2017년 처음 제작한 <풍정라디오>로 이듬해 서울노인영화제 대상부터 뉴욕 TV&필름페스티벌 은상 등 국내외 유명 상을 휩쓸고, 지난 19일 <풍정라디오 2018>로 한국민영방송대상 대상을 받는 등 상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PD는 세상을 바꾸는 직업'이라는 그의 신념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풍정리 반경 1km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풍정라디오는 평균나이 77세의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제작하는 공동체 라디오다. 2017년 3월 개국해 농번기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방송되지만, 편성표도 없고 방송 대본도 없다. 그때그때 마을 주민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이 전파를 타고, 마음이 내킬 때 마이크 앞에 앉는 이가 DJ가 된다.

조용했던 마을은 풍정라디오로 생기를 찾았다. 과거의 추억부터 소소한 일상, 때로는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까지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쉰 살을 넘긴 아들은 여전히 자식들을 위해 감을 손질해 말리는 노모를 향한 마음을 담아 나훈아의 '홍시'를 틀었고, 아들의 결혼 실패 후 우울증을 앓으며 두문불출하던 어머니는 1년 만에 풍정라디오를 통해 주민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박원달 PD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었다"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풍정리 이장님의 말처럼 라디오를 600일 이상 이어오면서 풍정리가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SNS에도 도전하는 과정을 담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원달 PD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2017년 TBC <풍정라디오> 포스터 ⓒ TBC

지난 19일 한국민영방송대상에서 TBC <풍정라디오 2018>로 대상을 받았다. 2017년 제작한 <풍정라디오>를 통해서도 여러 상을 받았고, 계속해서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상을 받아야 할 분들은 풍정리 주민들이다. 내가 그 분들을 대신해 큰 상을 받은 것 같다. 수상 기념으로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다. 또 다큐멘터리 제작은 PD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촬영감독과 작가부터 FD, 성우, 출연자까지 모든 분들이 PD라는 마인드를 갖고 임해줘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이 분들께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르신들이 직접 PD가 되고 DJ가 되어 공동체 라디오를 운영하고, 이를 통해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린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

고립된 마을을 찾아 라디오 방송을 한다는 내용의 벨기에 TV 프로그램 <라디오 가가>를 보고 이 프로그램에 푹 빠지게 됐다. '나는 저런 아이디어를 왜 내지 못했을까?'하는 부러움과 자책을 느끼던 어느 날, TBC 견학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라디오 장비를 봤고 순간 '산골마을에 미니FM 방송국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산골마을 노인들의 라디오 방송 제작기,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삶의 변화'라는 로그라인(이야기의 방향을 설명하는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딱 30분 정도 걸렸다.

편성표나 대본 없이, 어르신들에게 라디오 운영을 모두 맡긴다는 게 걱정되지는 않았나.

물론 사전에 어르신들도 간단히 조작할 수 있도록 라디오 장비들을 세팅해 놓긴 했다. 하지만 NG가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실수를 바라기도 했다. 실수도 하고, NG도 나다가 점점 좋아지는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게 다 내 편견이었다. 오히려 '동네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 때문인지 어르신들이 자신감을 갖고, 신나게 하시더라. PD 입장에선 'NG가 나야 더 재밌는데, 왜 안 나지' 싶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풍정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을 것 같다.

'상춘이 어머니' 손순희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들의 결혼 실패 후 1년간 우울증으로 집에만 계시던 분인데, 라디오 방송에 참여하면서 우울증이 사라졌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한 번의 출연으로 마음을 여셨고, 방송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이 분을 감싸줬다. 자연스럽게 이웃과 어울리면서 손순희 씨의 우울증도 서서히 사라졌다. 미디어에 치유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이 분과 <풍정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 TBC <풍정라디오> 스틸컷 ⓒ TBC

'지역방송의 위기'라는 말이 새롭지 않을 정도로 지역민방의 제작 여건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TBC에서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계속해 제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요즘 지상파 방송사 제작 여건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TBC의 제작여건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물론 더 제작비가 풍부하고, 제작기간도 길면 좋겠지만 '실험 정신'을 갖고 고민한다면 답은 나오게 마련이다. '선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PD는 '피곤하고 되다'의 줄임말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웃음) 오히려 약간의 결핍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슬림한 조직인 만큼 단점도 있지만 의사결정이 빠르고, 한 번 일을 맡은 뒤에는 회사가 PD를 신뢰하고 믿어준다는 장점도 있다.

그동안 연출한 작품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 대안학교 학생 등 제도권 밖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일관적으로 느껴진다. 이들을 조명함으로써 전달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던 것인가.

1997년에 5년차 광고기획사 AE에서 TBC PD가 됐다. 입사 초기엔 별반 다르지 않은 PD였는데, 하다 보니 휴먼다큐를 주로 하게 되고, 또 그러면서 느끼는 것들이 생기다 보니 20여 년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일이다. PD는 프로그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PD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가지고 사회에 도움이 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보람이 아니겠나. 더 많은 PD들이 미디어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풍정라디오>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2022년 9월 19일이 되면 개국 2000일이 된다. 2022년까지 매년 <풍정라디오> 1편씩을 만들고 싶다. 또 2017년부터 2022년까지의 기록을 영화로도 다시 제작할 생각이다. 올해부터는 풍정리 어르신들이 유튜브를 시작하셔서 우리도 돕겠다고 했다. 그래서 2019년 버전 <풍정라디오>에는 풍정리 주민들의 유튜브 도전기도 함께 담길 것 같다. 박막례 할머니까진 아니더라도, 이 분들이 즐겁게 사는 모습이 세상에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르신들이 사는 마을 어디에든 적용이 가능한 만큼 <풍정라디오>의 포맷을 개발해 글로벌 공동제작이나 포맷 수출도 타진해보고 싶다. 또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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