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는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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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돌의 비정상적인 체중 관리... 규격화된 미의 기준은 누가 만드나
  • 허항 MBC PD
  • 승인 2019.05.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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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쇼에 선 모델의 모습. ⓒ픽사베이

[PD저널=허항 MBC PD] 개인적으로 옷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휘황찬란한 옷들과 신발, 가방들은 카탈로그 사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다가 정말 마음에 들고 가격대도 나쁘지 않은 옷이 눈에 띄면 종종 구입하는데, 가끔, 아니 자주 사진 속 모델이 입은 옷과 지금 내가 입은 옷이 같은 옷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모델이 입었을 때는 분명히 참 예뻤는데, 왜 내가 입으니 핏이 이리도 어정쩡(?)할까.

이런 의문을 조금 풀어주는 책을 만났다. 한때 굴지의 디자이너들이 너도나도 탐내던 톱모델 빅투아르 도세르가 쓴 <죽을만큼 아름다워지기>(애플북스)라는 논픽션이다. 제목이 다소 극단적인데, 책의 내용도 그만큼 극단적이다.

프랑스 명문대학 시앙스포를 준비하던 우등생이자, 미래의 배우를 꿈꾸던 19세의 빅투아르는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모델 캐스팅 제의를 받는다. 나중에 배우가 되기에 도움이 되는 커리어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모델의 길에 들어선 그는 178㎝의 키에 58㎏이라는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패션계에서 말하는 ‘날씬’의 기준은 그것이 아니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그에게 50㎏대 미만, 44사이즈를 요구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이 가득했던 빅투아르는 끼니를 굶는 것은 물론이고 관장약까지 동원해 단기간에 40㎏대, 33반(!)사이즈라는, 기아 상태의 몸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샤넬과 셀린느,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브랜드는 앞다퉈 빅투아르를 런웨이에 세웠고, 그는 단숨에 가장 핫한 모델로 떠올랐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과 영양실조로 그녀의 정신상태는 점점 피폐해졌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델들을 대하는 비인간적인 방식도 그녀를 괴롭혔다. 모델들에게 달랑 티팬티 한 장만을 입히고 캐스팅 오디션을 한다는 루이비통, 50㎏도 안 되는 모델에게 살 좀 더 빼라고 하는 프라다, ‘앉아, 일어서’ 하며 동물을 다루듯 모델을 다루는 사진작가들, 그리고 그 안에서 더욱 독해져가고 메말라가는 모델들.

결국 빅투아르는 스트레스와 식이장애로 거식증과 폭식증을 반복하다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다. 책 제목 그대로 아름다워지려다가 죽을 뻔한 것이다. 그는 결국 짧았던 모델 생활을 은퇴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와 원래 꿈이었던 배우를 준비하고 있다.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일상생활을 회복한 그의 현재 몸매는 178㎝에 68㎏. 의학적으로 ‘정상’ 몸무게를 되찾은 것이다.

브랜드 이름과 디자이너, 모델들의 실명까지 적나라하게 나열한 그녀의 생생한 경험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모델’이라는 단어를 ‘연예인’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픽사베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나는 연예인들, 특히 아이돌들의 몸매를 보며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앙상한 몸매로 춤을 추거나 연기를 하는 모습 뒤에는 빅투아르처럼 비정상적인 식습관과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50㎏이 넘는다고 뚱보 취급을 받는 패션모델처럼, 정상 몸무게를 가지면 뚱뚱하다는 악플을 받는 게 연예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회식 때, 맛있는 요리들을 단 한 숟갈도 먹지 않았던 여자아이돌의 모습이 퍼뜩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주변에서 권해도, ‘괜찮아요’를 연발하다가 바로 안무연습 스케줄을 소화하러 떠나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나를 포함한 제작진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새삼 돌이켜보니, 그것은 매우 이상한 것이 맞았다. 그 짧은 무대와 런웨이 위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밥을 굶고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가며 살을 뺀다는 것. 더구나 스무살 초반, 심지어 10대에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게 될까. 혹시 연출자로서의 나는, 그런 비정상적인 루틴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 빅투아르 도세르는 패션계를 떠나서도 아직 폭식증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한 듯하다.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이제 내 삶은 오롯이 나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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