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을 아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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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아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노출 콘크리트’로 거장 반열에 올라...다큐멘터리 영화 등 조명 움직임 활발
  • 이은미 KBS PD
  • 승인 2019.05.22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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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 컷.

[PD저널=이은미 KBS PD] 벌써 5~6년 전인가 보다. KBS <문화 책갈피>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관심은 있지만 담지 못했던 장르가 하나 있다. 바로 건축 분야다.

지금은 VR(가상현실) 기술과 360도 촬영이 가능해 또 다른 얘기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건축의 공간감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을 풀지 못해 결국 포기했었다. 아니다. 그보다는 유명 건축물이 있는 곳으로 장거리 출장이나 해외 출장을 갈 예산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건축 용어나 기법을 잘 몰라서 지레 겁먹었다는 것이 뒤늦은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을 떠나 개인적 취향으로 예술을 감상하려고 해도 건축은 다가가기 힘든 장르다. 그림이야 ‘나도 한번 그려볼까’ 마음먹을 수 있지만, 건축은 ‘나도 한번 설계해 볼까’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 뿐인가. 미술관에 가면 여러 작품들을 볼 수라도 있지, 건축물은 단 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일도 감수해야한다. 날씨라도 좋지 않으면 낭패다. 참으로 가성비 낮은 장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권투선수 출신의 일본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축가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어 ‘입덕’하기 괜찮은 인물이다.

제주도에 그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가 있다. 오년 전 촬영차 제주도 섭지 코지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건축가의 이름은 안중에도 없었다. 콘크리트 담에 작게 뚫린 사각 구멍이 건너편의 섬과 바다를 마치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처럼 보이게 했던 이미지만 남아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건축가, 참 핫한 사람이다. 요즘 힙하다는 카페와 핫플레이스의 외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가 ‘안도 타다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하니 다시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나 ‘물의 교회’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강원도 원주에 그가 설계 했다는 ‘뮤지엄 산’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출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뮤지엄 건물로 향하는 길은 상쾌했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길처럼 미지의 세계가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너무 오글거리는 거 아니야?’하는 순간 도슨트가 비밀 하나를 알려준다.

주차장 입구에서 뮤지엄 메인 건물으로 다가가는 길을 낼 때, 안도 타다오는 치악산 사이로 부는 바람을 염두에 뒀고 경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내리막길을 계산해 설계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어? 정말 내리막길이었네’한다.

그 주변에는 닥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어 놓아 뭔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의도했다고 한다. 또 하늘과 산 풍경을 사이에 어느덧 슬며시 나타나는 담이 나도 모르게 그 담을 따라가게 한다. 메인 건물로 유인하는 기술이 그야말로 ‘넛지효과’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드디어 본다는 기대에 차서 뮤지엄 메인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웬걸. 제주도에서 본 건축물과는 느낌이 다르다. 훨씬 더 높은 노출 콘크리트 벽과 좁고 어두운 복도 때문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대단한 건축가라더니, 작가 스스로가 너무 자아도취한 느낌이잖아’라고 생각했다. 폐쇄적인 설계가 관람객에 대한 배려보다 건축가의 의도를 강조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뮤지엄 산 개방형 천정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

ⓒ이은미 PD

섣부른 불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어둡고 좁고 답답한 실내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빛과 하늘이 있었다. 담과 천정 사이로 한 줄기 빛과 하늘을 보는 순간, 마치 풍경을 그냥 자연이 아닌 미술 작품으로써 만나는 느낌. 클라이맥스다. 이 건축가, 폐쇄공포증이 있어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극적 긴장감을 끌어낼 줄 아는 건축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안도 타다오는 소위 ‘쪼는 맛을 아는 건축가’다.

안도 타다오의 시그니처는 또 있다. 바로 노출 콘크리트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는 이게 비용을 아끼려고 도입한 공법인 줄 알았다. 또 섣부른 선입견이었다. 방송용어로 표현하면, 노출 콘크리트는 곧 생방송이다. NG가 없어야 한다.

건물 구조대로 벽을 세우듯이 그 장소, 그 위치에 거푸집을 세우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거푸집을 해체해 봐야 안다. 만약 일부가 제대로 굳지 않았다거나 파손이 되었더라도 보수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야말로 NG 없는 생방송이다.

이런 대책 없는 방식을 고안한 사람이라니. 건축에 대해서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각이 자유로운가. 안도 타다오의 사진을 보니 고집 세게 생겼다.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에서도 건축가는 직원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이렇게 저렇게 도면을 수정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는 ‘30분이면 되지?’라고 묻는다. 에너지 넘치는 귀여운 꼰대 건축가라고 하면 실례일까.

뮤지엄을 투어할 때, 운 좋게도 ‘뮤지엄 산’의 내진 설계를 담당했던 국내팀 엔지니어를 만났다. ‘같이 일하기 힘들었죠?’하고 슬쩍 물어보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투어를 함께 하던 관람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나, 보통 기가 센 양반이 아니다.

그런 안도 타다오도 자신의 기획의도를 수정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통유리 창을 통해 펼쳐지는 치악산의 풍경은 건축가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미장센이였을 터. 하지만 혹시 모를 지진에 대비해 통유리 창을 가리더라도 기둥 하나를 세워야 한다는 기술팀의 의견에 결국은 손을 들었다. 관객을 위해 기획의도를 수정하는 유연성과 그 기준이 고객 안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뮤지엄 내부에 있는 노출 콘크리트 벽의 모서리를 보면 약 2㎜가 둥글게 깎여 있다. 관람객들이 복도 코너를 돌다가 모서리에 혹시라도 머리를 부딪힐까봐 거푸집에서 나온 노출 콘크리트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냈다. 수정과 보완을 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과감히 ‘전문가의 욕심’을 양보하는 안도 타다오가 달리 보였다.

안도 타다오는 클라이맥스를 위해 ‘쪼는 구성’을 할 줄 하는 연출가이자,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편집점도 수정할 줄 하는 디렉터이자 감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초반에 이런 인터뷰가 나온다. 창조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음악회도 가고 미술관도 가면서 예술 경험을 하고 새로운 감각을 깨우라고. 감각보다도 그의 디테일과 도전정신, 과감함에 팬이 한명 더 생겼다는 것을 ‘꼰대 거장’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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