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부장님’이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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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부장님’이 하는 일
분란이 일상인 제작부서, 민원 해결사부터 불가피한 개입까지 쉽지 않는 업무의 연속
  • 박재철 CBS PD
  • 승인 2019.05.24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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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이 봉급하고, 때에 걸맞은 승진 아니면 뭘로 보상받겠나?”라고 하지만 방송사는 사정이 좀 다르다. 2014년 방송된 tvN <미생> 화면 갈무리. ⓒtvN

[PD저널=박재철 CBS PD] 고자질, 삿대질, 비럭질처럼 ‘질’이라는 어미에는 폄하와 자조의 뉘앙스가 따라다닌다. 얼마 전 ‘박 PD’에서 ‘박 부장’으로 호칭이 변할 때는 몰랐다. 왜 선임들이 부장 업무를 ‘부장질’로 피식 웃으면서 불렀는지. 여우가 제 꼬리를 감춘다고 해도 오래 못 가듯이 부장 직책 뒤에 붙은 ‘질’은 곧 그 본색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직장인이 봉급하고, 때에 걸맞은 승진 아니면 뭘로 보상받겠나?”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법하지만 방송사에서 승진의 의미는 좀 다르다.

방송사는 ‘일사분란’보다는 분란이 일상인 듯한 곳이다. 개성이 강하고 독립성이 체질화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구심력이 원심력에 못 미친다.

“회사의 지원은 최대화, 프로그램의 개입은 최소화!” 되돌아보면 내가 현업 PD였을 때도 그걸 명분의 지렛대로 삼아, 부장의 명령에 맞서곤 했다. 정당과 부당 사이, 그 경계 위에서 갈팡질팡하는 오더에는 부당한 제작 자율성 침해 쪽으로 거칠게 몰아 부치곤 했다. 유구무언이다.

PD 배당과 예산집행, 프로그램 존폐와 진행자 선정 등 부장은 주요 결정권자다. 그러면서도 주인 눈치 보는 만년 세입자처럼 방식과 시기를 견주어 가며 일선 PD들에게 조심스레 운을 떼게 된다. 프로그램에 대해 시답잖은 말 한마디 건네기도 여의치가 않다. 이웃하는 보도국 동네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과장을 좀 섞자면, 독립성이 강한 내치형 주지사와 외치에만 치중해야 하는 연방국의 대통령 같은 구도랄까? 권리보다는 책임 쪽으로 부등호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민원의 범위는 꽤 넓다.

“부장님, 스튜디오에 형광등이 나갔나 봐요.” “부장님, 휴가 때문에... 대타 좀 해주실 수 있죠?” “부장님, 진행비 카드가 떨어졌어요. 저희 팀 밥 사주세요”“부장님, 이 MC랑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장 바꿔주세요” “부장님, 부장님, 부장님...”

▲ ⓒ픽사베이

선임자의 클리셰 같은 푸념 “프로그램 할 때가 좋았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온다. 한때, 고대 석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기둥의 문양이 아닌 기둥 간의 간격에서 나온다고 여겼고, 인간관계 역시 필히 그러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상황은 확실히 버거웠다. 매번 개입해야 되고 매번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누군가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일이 ‘지식인의 본업’이라고 하던데 그건 지식인일 때라야 표 나는 일이지, 부장의 참견은 때론 호환마마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이야기할까보다는 어떻게 이야기할까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수레가 내 뒤에 놓여야 끌고 가는 법인데, 언제 그럴 수 있을까? 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수레, 부장이라는 이름의 수레를 늘상 뒤에서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근력이 붙은 팔뚝에 새겨지는 변화의 기미가 있다.

선후배 부원들에게 한마디를 하려고 해도 뭔가 제대로 알아야 하니 자의반 타의반 입사 이후 가장 많이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게 된다. 동시간대 타사 프로그램까지 나름 꼼꼼히 체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가하면, 그동안 귓등으로 들었던 동료들의 ‘인상비평’이 싫었던 당사자이기에 귓속으로 전달되는 ‘인상적 비평’ 하나 던지고자 질긴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뿐인가, 혼자만 하던 일을 부원들과 함께 할 만한 프로젝트로 키워 기획한다. 선곡리스트 확충을 위한 음악 모임을 만들어보고 유고 뮤지션의 추모 공연과 특집 제작을 할 수 있는 외부지원을 알아본다.

흔히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지만 자리는 그 사람을 드러낼 뿐이라는 말에 난 한 표다. 그러니 언제까지 이 뿌리 없는 의욕이 갈 지는 미지수다.

다만, 해가 지면 나무의 그늘이 넓어지듯이 ‘부장질’ 역시 타인을 향한 관심의 그늘을 조금씩 넓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무관심했던 주변부 누군가의 대소사가 조금씩 내 삶의 중심부로 자리를 옮기고 있음을 느낀다. ‘부장질’이 준 변화라면 변화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한다.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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