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기밀 누설, 알권리 때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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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기밀 누설, 알권리 때문이라니
‘3급 기밀’ 양국 정상 대화 건네고 공개한 외교관‧강효상 의원, 엄벌해야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9.05.2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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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정상 통화 내용을 누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회의원의 위험한 돌출행위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영혼없는 외교관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 서기도 한다. 공사 구분 못하는 외교관과 공천에 눈 먼 국회의원이 힘을 합치면 국가적 재앙도 가져올 수 있다.

만고의 역적, 이완용 같은 반민족적 행위자가 역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같은 고등학교 선배라는 이유로 한 외교관이 본인이 업무상 파악한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 강 의원은 이를 근거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구걸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양국 정상 간의 통화는 3급 기밀에 해당하며 이를 사전에 누출하거나 공개했을 때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강 의원과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면서 ‘공익제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나 ‘공익제보’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성립을 위해선 최소한 세 가지 전제조건이 총족돼야 한다.

첫째 공익적 가치다. 공개를 함으로써 국가적‧국민적 이익이 훨씬 클 경우에는 비록 법을 위반하더라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주로 비리나 부정, 특혜 사건 등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등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비밀리에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가 성립된다는 법리다.

‘양국 정상 간의 대화’가 사전에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그 대화 내용에서 ‘나라를 팔아먹기로 했다’든가 ‘부정한 이익을 감추려했다’는 정도의 내용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 정당성 문제다. 정상 간의 대화나 외교문서 등은 국가기밀로 보호받아야 할 정당한 법적 근거가 있다. 외교관이나 국회의원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 이를 유출‧공개하는 것은 이미 범법행위이고, 사안에 따라 ‘기밀유출’ ‘매국행위’ ‘이적행위’ 등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국가적 형벌체계의 기본이다. ‘공익제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보호받아야 할 정당한 국가기밀을 폭로해야 할 불가피성, 범법행위를 능가하는 국익과 함께 대의명분과 정당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셋째 의도성 문제는 모든 범죄행위의 경중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다. 즉 범의(犯意)의 유무를 판단해보면, 양국 정상 간의 통화내용이 3급 비밀이라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 내용이 어떤 형태로든 공개되면 외교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시기 등 서로가 비밀을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정보를 외교관이 건네고 야당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적극적으로 공개하기까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

‘알권리’니 ‘공익제보’니 하는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궁색하거나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소리다. 오죽하면 자유한국당 내부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까.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도 ‘알권리’라는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대신하는 말이다.

<동아일보>도 사설을 통해 이번 사태를 국가 신뢰 훼손으로 규정하며 “(강효상 의원이) 한건주의 폭로로 국익을 훼손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언론사들조차 ‘국민의 알권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법치사회에서 공사구분 안하는 영혼없는 외교관이나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합당한 죄를 물어야 한다. 명백한 범법행위조차 제대로 처벌 못하면 국가 기강과 품격은 위기에 빠질 것이다. 그동안 외교부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국가나 법을 존중하기보다 사사로운 연고나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 외교관은 반드시 형사처벌로 다스려야 한다. 이게 당사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언론인 출신 강 의원의 돌출행위는 ‘알권리’와 무관하다. 야당에서조차 반대 논평이 줄을 잇는데, 자유한국당만 ‘공익제보’ 운운하는 것은 공익제보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범죄행위로 단죄하기에 앞서 제1야당답게 공당의 책임있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범법행위에 대해 사법부도 엄격하게 단죄해야 된다.

외교관과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고 이를 ‘알권리’로 강변하면, 언젠가 다시 나라를 팔아먹고도 ‘애국행위’라고 우기는 기막힌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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