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안판석 멜로 진화와 자기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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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누나'에 이어 세심한 일상 묘사에 현실 문제 포착...'중복 출연'으로 기시감 커

▲ MBC 수목드라마 <봄밤> 방송 장면. ⓒMBC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MBC 수목드라마 <봄밤>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올 법한 드라마다. 안판석 PD 전작인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재밌게 보고, 연장선에 있는 작품을 또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에게 <봄밤>은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반면 소소하게 펼쳐지는 일상 연애가 전작에서 본 듯하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출연자 다수가 다시 나와 차별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 될 수 있다. 과연 안판석 PD의 멜로는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자기복제에 빠진 것일까.

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봄밤>은 흥미로운 지점들이 적지 않다. 지금껏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해오던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닌, 일상 어딘가에서 흔히 봤던 현실 상황들을 들여다보는 듯한 <봄밤>은 흘러가는 풍경들 속에서도 우리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약사인 유지호(정해인)와 사서인 이정인(한지민)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그렇다. 숙취 때문에 약국을 찾은 여자와 그에게 술 깨는 약을 주는 약사.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약을 달라는 여자에게 굳이 병뚜껑을 따서 건네는 약사에게 섬세한 배려 같은 걸 읽게 되고, 마침 지갑을 놓고 온 여자가 당황해하면서도 꼭 갚겠다고 강변하는 대목에서 남다른 자존감이 드러난다.

그렇게 무전취식(?)을 한 채 약국 문을 나선 여자에게 굳이 달려가 몇 만 원을 빌려주는 약사의 모습에서는 친절 그 이상의 마음이 묻어난다.

사실 이런 일이 뭐 그리 큰 사건일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마법 같은 순간은 이런 자잘한 사건들이 쌓이고, 두 사람만의 남다른 감정들이 얹히면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안판석 PD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이런 일상 연애의 모습을 포착했고, 그 연장선 위에서 <봄밤>의 연애를 그려내고 있다.

▲ MBC 수목드라마 <봄밤> 방송 장면. ⓒMBC

안 PD는 이런 연애가 사회적 의미를 담는 지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직장 내 미투 사건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 의해 발현되는 것처럼, <봄밤>의 연애는 아마도 이정인과 유지호가 처한 외부 압력이나 편견의 문제를 끄집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정인은 학교 교장인 아버지로부터 이사장의 아들과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라는 소신이 확실한 인물이다. 또 유지호는 홀로 아들을 키우는 비혼부다. 점점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이 뜨거워질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장애물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안판석 PD의 멜로는 ‘운명적인 사랑’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큰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다. 굉장히 극적인 사건들이 있고, 그 난관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랑이 이뤄지는 멜로는 이제 식상하다. 그것보다는 일상 속에 다양한 감정들이 깊이를 더해가면서 소소한 일도 크게 느껴지는 멜로가 더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안판석 PD는 마치 관찰카메라를 들이대듯 일상의 멜로를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섬세한 디테일을 그려낸다.

일상을 담는 영상이 자칫 변별력을 잃어버릴 위험성은 존재한다. 특히 전작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정해인을 그대로 데려오고, 주변인물로 출연했던 길해연, 오만석, 주민경, 김창완 등도 다시 캐스팅해 전작과 유사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봄밤>의 남자주인공 정해인이 가진 아이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손예진이 남기고 떠난 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안판석 PD의 멜로를 반기는 입장에서도 중복 출연진 문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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