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 성범죄 또 면죄부 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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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10년 구형한 부산 성폭행 미수범 집행유예 판결 ...솜방망이 처벌에 지역사회 반발

▲ 대법원 전경.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법원이 성폭력 사건에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 판결을 여전히 내놓으면서 불신을 키우고 있다. 부산지역 대학교 여자기숙사에 침입해 학생을 성폭행하려던 남자 대학생에게 최근 법원이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해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솜방망이 처벌에 공분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새벽 1시 반쯤, 부산대 여자 기숙사에 이 학교에 다니는 26살 남학생이 침입했다. 남학생은 계단에서 마주친 여학생의 입을 막은 뒤 성폭행을 시도했고, 저항하는 여학생을 마구 때려 여학생의 이가 부러지기까지 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초범이지만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은 최근 이 남학생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풀어줬다. 법원의 감경 사유는 흔하게 들어왔던 '심신미약' 등 이었다.

재판부는 남학생이 술에 취해 기억이 끊긴 이른바 '블랙아웃'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며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의 10년이라는 중형 구형을 간단히 무력화시키며 집행유예로 바로 풀어준 것이다. 이 판결은 한국 성폭력 판결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평가될 것이다.

심신미약(心身微弱)이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책임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 형법 10조 2항에 따라 감경사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의 또는 과실로 심신미약을 유발한 때에는 감경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산대 여대생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검찰과 달리 법원은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한 것이다. 이게 징역 10년 구형과 집행유예 선고로 천양지차의 결과가 된 셈이다. 과연 심신미약으로 인정할만한가.

여자 기숙사로 제 발로 찾아간 점으로 보면 범의(犯意)를 엿볼 수 있어 우발적이지 않다 마주친 여학생을 범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에서 남녀를 구분 못할 정도의 ‘블랙아웃’도 상태 아니었다. 저항한 피해자의 치아까지 부러졌는데, 만취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상식선에서 판단해도 “고의 또는 과실로 심신미약을 유발한 때에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규정이 적용되어 감경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심신미약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

▲ 지난 1일 KNN이 보도한 '기숙사 침입 성폭행 미수 대학생 집행유예' 판결 소식. ⓒKNN

그런데 부산지방법원은 왜 이렇게 검찰의 중형 구형을 무시하면서, ‘심신미약’이란 억지 주장을 판결에 고스란히 담았을까.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 판결이 위선과 억지를 말할 땐 추가 설명이 있어야 한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 분노하고 사법부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판사가 심신미약으로 오판했거나 가해자 측의 변호사가 전관예우 출신이거나 유능해서 법원의 논리를 압도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 사법부의 신뢰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부끄러워 하지만 사법부는 별로 수치심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국민의 기대 수준과 달리 성관련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2015년∼2018년 6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이 2015년 27.43%에서 2018년 6월 현재 32.73%로 증가했다고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도 2015년 38.87%에서 2018년 6월 현재 40.72%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경우 최근 3년간 처벌받은 인원 중 집행유예와 재산형을 선고받은 인원은 1만1천658명으로 전체의 65.03%에 해당한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 정도로 나온다고 보면 된다.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심신미약으로 봐주는 너그러운 판사.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음주범죄의 경우 가중처벌 사유가 된다는데, 한국은 술에 관한한 판사들의 상식이 몰상식으로 바뀌는 것 같다. 법리도 정의도 술 앞에서 무너지니 법관의 허세가 부끄러울 뿐이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찰 측은 허위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가 모의수능 시험을 학생의 입장에서 일일이 직접 풀어보는 성의까지 보였다. 판사가 정말 심신미약 상태에서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 만취상태까지 술을 한번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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