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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가 없는 땅

세상 돌아가는 일이 참으로 혼란스럽다.정치개혁, 경제개혁, 언론개혁 등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절실한 3대 개혁과제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 일관되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본질이 호도된 정계개편 논의나 잡음 많은 나눠먹기식 인사에 실망과 좌절만이 깊어간다.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믿음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그런 탓인가. 올해는 유난스런 황사로, 이상기후로 날씨마저 우리를 우울케 한다.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우선 혼란을 혼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어차피 그것이 오늘의 냉엄한 현실이라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 혼돈 속을 들여다보자.세상이 아무리 아수라장이라 하더라도, 미래가 여전히 불투명해도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있어야하는 이유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현안이 정치문제이든, 경제문제이든, 사태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본질은 있는 법이다. 그것을 읽어내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 속에 배어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이 세상을 말해야하는 지금 이 시대 우리 프로듀서들이 해야하는 숙명이고 과제이다.그럼에도 이런 원론적인 얘기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왠지 답답하고 무언가 소리치고 싶다. 왜일까.명예퇴직한 어느 선배가 나의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었다.그 선배는 우리 집단을 메아리가 없는 땅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모습을 바꾸려해도, 함께 모여 논의하자고 해도, 새로운 제안을 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인 조직. 사석에서는 온갖 불만이 터져나오지만 무언가 하자고 하면 입을 다무는 동료들. 그 속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시도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게 그의 논리다.그 선배는 또 말했다. 양화는 악화에 의해 구축 당하고 있다고. 양화는 자신이 옳기 때문에 혼자여도 관계없지만, 악화는 스스로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모일 수밖에 없고 결국 악화무리들이 개인인 양화를 하나씩 하나씩 죽이고 있다고.그렇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은 나에서, 우리에게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그 진정한 의미조차 희석돼버린 개혁이란 작업도 결국은 건강하고 신념에 찬 개인의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그러나 그 개인이 외로운 외톨이라면 그의 목소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선배 말대로 외로운 개인이 어느 순간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되고, 자연히 그의 꿈이나 이상은 한낮 몽상주의자의 잠꼬대로 끝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과연 우리집단은 메아리가 없는 삭막한 땅일까.아니면 혼돈의 틈새에서 일시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한 방황일 뿐일까.그 어느쪽이든 분명한 건 소리치는 쪽이 있으면 화답하는 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 어차피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외로움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난하다.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잃어버린 메아리를 다시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그 메아리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떤 메아리든 지금의 혼돈을 정리해내 그 속에서 본질을 읽어내고 나아가 우리가 나아갈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내가 소리치면 누군가 답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란 믿음, 외롭고 지칠 때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 줄 상대방이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개인은 다시한번 자신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난세일수록 프로그램을 통해 말하는 강건한 프로듀서가 필요한 법이고, 프로듀서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장치인 메아리를 시급히 복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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