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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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정신
  • 승인 1998.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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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90년대 초에 pd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pd는 저널리스트인가 문화 창조자인가, pd에게 우선 필요한 것이 저널리즘인가 문화주의인가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명확히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당시 선배 그룹은 문화주의를 선호했고, 후배들은 저널리즘의 입장에 서 있었다. 자신들의 시각에 서서 후배들은 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했고, 반대로 선배들은 후배들을 정치화되어 간다고 우려했다.
|contsmark1|새삼 지난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 논쟁이 우리 pd 집단의 정체성, 곧 pd 정신과 닿아있고 그 논쟁이 여전히 유효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정치적 혼란기(?)에 무엇인가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pd는 누구인가, pd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극히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자기확인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개인적 견해로는 pd 정신은 논쟁의 두 축인 저널리즘과 문화주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pd는 세상에 대한 비판, 감시 기능과 대중문화창조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쪽에는 문화주의 성향이 약해 보이고, 문화주의 입장에 선 쪽에는 저널리즘 기능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양쪽이 보완된 상태에서 사안에 따라 중요도의 강도가 인정되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contsmark2|그 두 축 위에서 pd 정신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치열한 역사의식이다. 92년 ys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나는 이제 세상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취재 차 국민의 의사를 배반하고 3당 야합을 위해 통일민주당을 해산시키던 그 현장에 있었던 내 경험이 그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pd들의 역사 소모임 멤버였는데, 그 모임을 이끌던 역사학 전공의 교수가 좌절에 빠진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6월 시민혁명이 가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는지 아는가. 숱한 사람들이 죽어갔고 터질 듯 터질 듯 쌓였던 숱한 사건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처럼 역사가 한 걸음 진보하는 데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과 역사의 큰 줄기 속에서 사건 하나 하나의 의미를 분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당시 나에게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이 나라가 되어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절망할 때마다 그 말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역사발전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이 경험과 생각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나 혼돈기의 pd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것은 현실 하나 하나에 좌절하거나 집착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적 맥락 속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해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 역사에 대한 믿음과 개인의 실천력이 담보되어야 하겠지만.
|contsmark3|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다.방송은 사람을 위해 태어났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방송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게 하고, 행복 만들기에 걸림돌이 되는 사회적 제약과 모순이 있다면 그것을 걸러내 주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심지어 국가조차도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에 다름아니다. 방송이 타인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감동을 통해 한 개인을 변화시키고, 감시와 비판을 통해 행복의 장애요인을 걸러주기가 필요하다. 그런 뜻에서 나는 pd에게 휴먼 다큐멘터리와 사회 감시 고발 프로그램은 한번씩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 믿는다. pd에게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인간미와 세상을 구조적으로 파악해 낼 비판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사람을 사랑하고 믿기보다, 서로를 불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contsmark4|당신의 일상적 삶이 빈곤하더라도그것을 비난하지 마시오.차라리 그대 자신을 욕하고 삶의 풍요로움을 불러올 정도로충분히 시적이지 못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시오.왜냐하면 창작자에게 빈곤은 없으며척박한 터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오.- r. m. 릴케 (문학사상 5월호 표지에서 인용)|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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