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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에서 대화로, 타성에서 반성으로
‘ 다큐모임’ 10주동안의 성과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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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mbc 교양제작국 pd들이 지난해 8월부터 매주 1회씩 10주간 가진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는 모임’은 프로그램 제작에 바쁜 일선 pd들이 프로그램 질 향상과 자기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진 것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다른 방송사의 pd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그 10주간 함께 공부하고 논의한 성과를 정리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contsmark1|● 싣는 순서1. 다큐멘터리와 비(非)다큐멘터리의 구분-공중파 tv다큐멘터리2. 다큐멘터리는 다양하다-독립다큐멘터리의 사례들3.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제작환경의 변화
|contsmark2|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객관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게 쉬운 일일까? ‘프로듀서는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한다’는 게 움직일 수 없는 당위라면 프로그램에 대한 이론은 평론가의 몫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의 일에 대한 이론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이고 그렇지 않으면 ddr(dan da ra)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보면 프로듀서들도 이론을 마냥 남의 몫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듯하다. 게다가 이론은 프로그램이 제작된 뒤의 설명 뿐 아니라 제작과정, 나아가서 사전 기획단계에서도 전혀 쓸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이다.다큐멘터리의 정의(定義)와 역사, 다큐멘터리의 무한한 다양성,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유통과정에 미친 영향 등 모든 이론 영역은 우리가 의식하든 안하든 하루하루의 제작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물며 한 동네에서 일하는 프로듀서들끼리 더욱 치열한 실천을 위해 보탬이 되는 이론을 공부하자고 다짐한 마당에야.작년 8월부터 10월말까지 10주에 걸쳐 열린 문화방송 교양프로듀서들의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는 모임’(줄여서 ‘다큐모임’)은 크게 보아 프로듀서들의 자의식을 스스로 일궈 나가기 위한 작은 한 걸음이었다. 누구보다도 많은 영상물을 취급하는게 프로듀서들이지만 눈앞의 일에 파묻혀서 지내다보면 다큐멘터리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시각을 잃어버리기 쉬운 것 또한 프로듀서들이다. 가령 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동기, 담고자 했던 메시지, 각 부분에서 활용한 기법, 제작과정의 에피소드 등을 단편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무척 익숙한 일이지만 누군가(평론가든, 기자든, 회사의 계선 조직이든) 상당한 논거를 갖고 논쟁을 일으킬 경우 지적인 토론으로 이를 소화해 낸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런 일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큐모임’은 자기가 하는 일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의식에 프로듀서들이 목말라 있었음을 반증했다고 볼 수 있다.둘째, ‘다큐모임’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협소한 다큐멘터리 관(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열어주었다. 공중파 프로듀서들은 자기가 속한 회사의 계선 조직에서 일해온 관계로 알게 모르게 그 조직의 특성(‘타성’이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길들여진 측면이 있다. kbs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전통이 짧고, 전문 다큐멘터리스트의 층이 엷은 mbc의 경우,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시각을 넓히는 것은 보다 좋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독립 다큐멘터리를 포함, 끝없이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스펙트럼이 존재해왔고, 또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조차 ‘다큐모임’ 이전에는 어려운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셋째, 이 모임은 프로듀서들끼리 경험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자리였다. 프로듀서들이 각자 고립된 상태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한 프로듀서의 노우하우를 다른 프로듀서와 공유하거나 체계적으로 쌓아나갈 제도적 장치가 없는 사정을 고려할 때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프로듀서들이 서로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다는 건 값진 일이었다. 토론보다는 초청강연에 의존했고, 타방송사나 독립 다큐 제작자들을 모실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앞으로 모임을 계속해 나가면서 얼마든지 시도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비록 mbc에 제한되긴 했지만 매주 평균 15명의 프로듀서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이러한 대화에의 갈증이 컸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이 모임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이 공감할 만한 사항으로서 구체적인 제작현장에 시사하는 바가 있음직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contsmark3|1. 다큐멘터리와 비(非)다큐멘터리의 구분 -공중파 tv 다큐멘터리
|contsmark4|각 방송사에는 이른바 ‘다큐멘터리’를 전담하는 부서와 ‘비(非)다큐멘터리’ 제작부서-가령 생활정보, 시사고발, 문화예술 등으로 편의에 따라 분류-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수정과 전복, 그리고 반란을 빼놓은 채 다큐멘터리를 말할 수 없다”는 니콜스의 고전적 정의를 상기할 때, 이러한 편의적 구분은 빛을 잃을 수 있다. 비록 전형적인 eng 구성 다큐멘터의 형식과 달리 스튜디오 mc멘트를 활용하는 프로그램 -가령 좥시사매거진 2580좦, 좥pd수첩좦, 좥추적60분좦, 좥역사추리좦 등-이라도 주제와 시각의 진보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상식적인 50분 eng 구성물보다 더 다큐멘터리의 본령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생활정보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eng코너도 넓게 보아 엄연히 다큐멘터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가 드라마와 다른 이유는 다큐멘터리가 실재(reality)의 직접적 기록이라는 데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서의 실재도 결국은 프로듀서의 관점에 따라 취사선택, 구성된 것이므로 픽션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실재에 더욱 근접하기 위해서 음악, 나레이션, 자막, 구성 등 인위적 장치를 모두 제거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최근에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재연 기법을 사용하는 게 보편화됐고, 시네마 베리떼 방식에 따른 연출자나 인터뷰어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주인공과 실재를 연출의도에 맞게 뒤틀어 버리는 것도 별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제작기법이다. 심지어는 가상의 현실을 실재처럼 구성한 모큐멘터리(mocumentary=mocking documentary)도 어엿한 다큐멘터리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른바 ‘다큐멘터리’에 드라마 시퀀스가 삽입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공인된 ‘드라마’에서 실제 기록화면을 삽입하거나 다큐멘터리적인 카메라워크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이렇게 보면 ‘실재의 기록 = 다큐멘터리’라는 등식은 쉽사리 성립되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라 해서 반드시 관찰자적 양식(카메라와 연출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개입을 자제하여 상황을 몰래 보는 듯 화면을 구성하는 양식. 디렉트시네마 기법이라고도 하며, mbc의 경우 좥인간시대좦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된 제작기법)을 취할 필요도 없고, 나레이션, 인터뷰, 음악, 자막을 다큐멘터리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라고 여길 필요도 없으며, 반드시 이미 일어났거나 진행중인 일만 다큐멘터리의 소재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이와 관련, 모임에서 시사한 외국 다큐멘터리 중 외계인의 시각에서 지구인의 성차별 문제를 관찰하고 풍자한 브라질 tv의 gender, lies & videotape 그리고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의 참화를 묘사하고 이에 대한 여론지도층의 안일한 자세를 고발한 영국 bbc의 "the war game"같은 작품은 우리 프로듀서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모큐멘터리 기법도 다큐멘터리의 한 종류라고 보면, 우리나라의 현상황에서 개연성이 높은 몇가지 통일 시나리오와 각 경우에 대한 우리의 준비를 주제로 한 가상 다큐멘터리도 얼마든지 구상해 볼 만한 것이다.다큐멘터리의 영역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영상물이 다 다큐멘터리인 건 물론 아니다. 일반적으로 “주관성을 통하여 객관성을 포착하고, 현실에 개입하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제작과정의 대원칙, 그리고 “훌륭한 다큐멘터리는 작품 자체보다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킨다”는 경향은 오직 다큐멘터리에만 적용된다고 하겠다. 가령 mbc 다큐멘터리 좥갯벌은 살아있다좦의 경우, 작품이 훌륭했다는 평가에 머물지 않고 좥갯벌을 살려야 한다좦는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큐멘터리만 가질 수 있는 실재와의 창조적 긴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반대로 인기프로그램 좥다큐멘터리-이야기속으로좦의 일부 아이템의 경우, 비록 ‘다큐멘터리’라는 간판을 달긴 했으나 귀신의 실재 여부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을 취해도 다큐멘터리로 보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귀신체험’이라는 일반적 현상을 주제로 한다면 일종의 문화다큐멘터리가 성립하겠지만(가령 ufo의 실재 여부를 다양한 증언을 통해 저울질해 본 다큐멘터리들이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개별적인 ‘귀신체험’을 실재인 듯 묘사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본령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물론 이 프로그램이 오락 프로그램으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부인되는 건 아니다)catv의 ‘q채널(25)’과 ‘ctn(29)’에서 수준높은 다큐멘터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건 우리 프로듀서들에게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매니어들은 catv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공중파 tv에 대해 더욱 질높고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에서 특별한 반성없이 해 오던 프로그램만 다큐멘터리라고 여기는 편협한 시각으로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다. (다음호에 계속)|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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