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아동학대, 아물지 않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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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윤무

|contsmark0|아동학대란 주제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현업에 있는 pd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아동학대의 실상에 대한 총론적 접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구체적인 개별사례를 통한 미시적 접근을 할 것인가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였다. 일단은 호소력이 강한 후자쪽을 택하기로 결정하고 개별적인 학대사례를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아동학대는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현장의 취재가 쉽지 않았고, ‘자기 부모가 자식을 좀 때리는 것 가지고 왠 난리들이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아동학대 현장에 대한 취재진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태였다.그러던 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과 숙모가 조카를 때려 아이가 다 죽게 생겼으니 제발 아이를 살려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제보전화였다. 이웃에 산다는 그 제보자는 상당히 상세하게 그 집의 사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삼촌 집에 조카 2명이 맡겨졌는데 처음엔 여자아이가 학대당하다가 작년 12월부터 보이지 않았고, 누나가 없어지자마자 다시 남자아이를 때리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죽기 직전’이라며 제보자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제보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설마하는 심정으로 그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영훈이를 보는 순가 무참히 깨져 버렸다. 온몸에 산재해 있는 피멍들, 맞아서 퉁퉁 부어 오른 손과 발, 예리한 것으로 찌른 듯한 작은 상처구멍들, 뼈만 남은 앙상한 갈비뼈, 그리고 한 눈에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화상자욱. 이것이 바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7살 영훈이의 모습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없어졌다던 영훈이의 누나 보람이는 바로 그 집 앞마당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고 부검 결과 사인은 기아사로 판명되었고, 아이들을 학대했던 삼촌과 숙모는 친부와 계모였음이 밝혀졌다. 굶주림과 학대 속에서 한 아이는 싸늘한 시체로 땅속에 묻혔고, 또 한 아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최후의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돼야 할 가정이 오히려 아동학대의 현장이었고, 가정에서 쓰이는 모든 집기들이 폭행의 끔찍한 도구로 쓰여졌다는 점은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감증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영훈이와 보람이의 경우 아동학대의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고, 또 그 폭력의 강도도 서서히 높아져 결국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렇다면 왜, 왜 때렸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맞아야만 했을까? 그러나 부모들의 대답은 단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아서”였다. 즉 아이들이 맞을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들 스스로가 때릴 이유를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격앙된 감정의 해소를 위해.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들이 방송을 통해 공개될 경우 자칫 정신나간 아버지와 지독한 계모가 벌인 잔인한 살인극 정도로,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비춰질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부부는 잔인한 살인마도 정신병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택시운전기사와 가정주부였으며 바로 이 점이 우리 누구도 아동학대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하게 시사한다.촬영 후반부는 영훈이가 학대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 아이가 겪는 고통을 있는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영훈이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영훈이는 너무나 고통에 익숙해져 있었다. 퉁퉁부은 팔뚝에서 혈관을 못찾아 주사바늘을 여러번 찔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열이 39도 40도를 오르내리는 위험한 순간에도 과자를 달라고 울었고 과자를 품에 안고서야 잠을 잤다. 정신적으로도 자폐증상과 대인기피증세를 보였고 또래 아이들에 대한 심한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다. 다행히도 영훈이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으로 상당히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외상은 빠르게 치료될 수 있어도 가슴깊이 새겨진 영혼의 상처는 아마도 평생동안 영훈이를 괴롭힐 것이다.영훈이는 항상 혼자다. 친척들은 영훈이가 사경을 헤매던 그 순간에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해 버렸고 입원하지 2주일이 지났지만 병실을 찾아오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가출했다던 영훈이의 친모를 어렵사리 찾아냈지만 그녀는 정신지체장애인이었다. 그저 영훈이를 보고도 웃고있을 뿐이었다. 7살짜리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영훈이를 보며 영훈이의 가슴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분노가 폭발했을 때를 상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때 이 모든 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contsmark1|취재를 마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조금만 더 일찍 제보가 되었더라면 영훈이 뿐아니라 보람이의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오는 7월 1일이면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다. 물론 이 법안 속에는 아동학대 금지조항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강화된 법조항의 신설이 아닐 것이다. “내 자식 내가 때린다”는 식의 아이 소유문화가 아닌 아이들도 그 나름대로의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있고, 외부의 어떠한 폭력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하며 아이답게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제2, 제3의 영훈이와 보람이는 또다시 생겨날 것이다.프로그램기획단계에서 세웠던 원칙, ‘학대의 현장을 통한 직접적인 고발이 아닌 학대로 상처입은 아이가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통한 정서적 접근’이라는 원칙을 지키고자 애썼지만 배려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그것은 순전히 나 자신의 욕심때문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보여주었던 뜨거운 관심과 격려에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아울러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했던 하영길 카메라맨, 윤류해 조연출, 정유신 작가에게 이 지면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시청자가 보내온 ‘영훈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contsmark2|영훈이에게 보내는 편지영훈아. 그 따뜻한 사랑을 알기도 전에 이런 아픔의 고통을 먼저 알게됐구나.하지만 영훈아. 세상은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란다. 두려워 하지 말고 너를 더욱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길 바래. 그리고 너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항상 널 위해 기도할께.몸도 마음도 그 전의 너의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 너의 어린이다운 천진함을 말이야 …
|contsmark3|※ 추신 : 현재 영훈이는 약간의 폐렴증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외상치료는 끝난 상태이며 지속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퇴원 후 영훈이를 맡아 키울 위탁가정의 부모들도 선정되어 서로 낯익힘을 하고 있다 |contsma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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