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의 눈]‘우린 국민의 안녕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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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해진 스웨터를 입은 아랍 소년이 허리춤 뒤로 붉은 조각돌을 움켜쥐고 있는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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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부서진 건물 사이에서 이스라엘 탱크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바로 그 짱돌을 던질 태세다. 사진에 소년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돌을 움켜진 손아귀에서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아버지들이 몇천년 동안 품었던 분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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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팔레스타인에서 취재 활동을 했던 로이터통신 기자들이 재작년에 펴낸 르포집 표지에 실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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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란 제목으로 출판된 이책은 몇십대에 걸쳐 계속 되어온 아랍과 유대인들의 분쟁을 생생한 현장 사진으로 풀어내고 있다. 포탄으로 숨진 아들의 시체를 관에 넣으면서 오열하는 아버지, 테러단의 습격으로 친구를 잃고 도서관 바닥에 주저앉은 여대생, 팔레스타인 분쟁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 회견을 준비하면서 백악관 대기실에서 각자의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는 클린턴, 아라파트, 그리고 라빈 총리의 긴장한 얼굴. 이 사진집은 신문 지상에서 활자로만 굳어져 가는 수천년간의 전쟁을 눈 앞 현실의 문제로 환원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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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대부분 책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도대체 누가 먼저 돌을 던졌나, 아니면 누가 더 많은 돌을 던졌나, 그래서 결국 누가 우리 편인가에 초점을 맞춰왔던 게 사실이다. 이 사진집을 보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대표적인 통신사인 로이터의 기자들은 과연 둘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거대 자본에 휘둘리는 미국의 몇몇 언론처럼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 것인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있는 아랍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시소의 양끝에 앉아 있는 유대와 아랍 가운데 로이터기자는 어느 자리로 몸을 기울여 무게를 더해 줄 것인가 하는 게 이 책을 펴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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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사진집은 이런 궁금증 자체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둘 가운데 어느 편에 서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나를 밝히는 것도 몇천년이 지난 오늘에는 이미 부질없는 짓이다. 분쟁의 최전선에 있는 기자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충돌은 결국 관념의 문제이며, 그 관념의 싸움이 현실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 가족과 이웃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로이터기자들의 렌즈는 분노로 일그러진 그들의 총을 어떤 방법으로 거두어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춰져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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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탄핵 사태와 관련한 방송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야당들은 방송이 자신들의 폭력적인 모습만 노출시킨 야당탄압 편파프로그램만 제작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기세가 여차하면 방송도 탄핵하겠다는 투다. 또 어떤 이들은 여당과 야당의 입장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 방송해야 한다는 괴상한 평등 논리를 펴기도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할이 탄핵을 반대하고 있으니 방송 편성이나 내용도 그 비율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대응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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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내 밥은 못 퍼주겠다는 무리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방송은 그렇다면 지금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인가. 팔레스타인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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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느 편에게 얼마만큼 골고루 나눠주어야 할 것인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우리 현실에서 마침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를 측정해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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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많은 이들은 아직도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우리의 많은 정치인들 역시 우리는 국민의 안녕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국민이 선택한 그들이,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들이 다시 국민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가를 가늠해 보여주는 것이 선거철에 즈음한 방송의 또 다른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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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ebs 참여기획팀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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