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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 위기탈출의 선결과제다

|contsmark0|최근 우리사회의 개혁 논란은 난파선 위의 토론을 연상케 한다. 모두가 상황의 다급함을 인정하면서도 위기탈출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서로가 타자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언론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일 뿐이다. 그것은 과거의 ‘왜곡’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논리를 내면화했던 보수언론들은 왜곡을 통해서라도 그 논리를 대중에게 관철하려 했다. 그로 인해 과거의 언론은 오히려 민주화의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언론은 권력이 아닌 자본의 논리를 교묘히 내면화 시킴으로써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돈이 되는 기사, 팔리는 기사로 재구성하고 있다. 외환위기, 실업사태등은 리얼한 컬러화보로 장식되지만 기사내용은 ‘걱정된다’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은 이리치고 저리치는 가운데 국민은 얼이빠져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 와중에 최근 모재벌 총수가 재벌해체론을 imf의 음모론으로 주장한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노동계의 반발에 대한 자본의 대항논리에 그친다기 보다는 주변부 자본이 간파한 세계자본의 식민성에 대한 자각의 일면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이에 대해 평소와 달리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리 언론 엘리트들이 imf를 전위부대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실체를 모를리 없다. 다만 그러한 대중적 각성을 유보하는 것이 현 정권의 위상과 언론의 실익면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대중이 위기의 모순성을 각성하게 되면 그들의 정치적 태도는 보다 분명해지고, 따라서 현재의 대중이 진보와 보수로 차별화 될수록 현재 언론들의 공동 시장은 위협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적인 언론들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위기를 제대로 규명하려하기 보다는 그 현상들에 집착하거나 각 주체들의 충돌이 던져주는 먹이를 위해 갈등지향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현재 우리가 대하고 있는 현실들은 본질과 요체가 없는, 즉 언론이 생존을 위해 ‘재구성’한 과잉현실(hyper-reality) 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재구성된 현실속에는 여론 수렴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갈등 그 자체의 표면화 전략과 노선없는 위기의식 고취, 그리고 소위 ‘발표 저널리즘’이 갖는 일과성과 책임회피로 언론은 무차별적인 대중들을 포획하려들 뿐이다. 그것은 마치 갇혀진 화재현장에서 화재 중계를 위해 스스로 출구를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시급히 언론이 개혁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작금의 언론이 그 본래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논리와 한줌밖에 안되는 사주, 경영진들의 횡포를 막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살파먹기 경쟁을 포기하고 차별화된 수용자 시장을 개척할 수있다.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문은 계속 찍혀나와야 하고 방송은 계속 틀어져야 한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개혁의 본질이 언론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키고 언론인들의 자유롭고도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언론개혁은 성형 수술이 아니라 유전 공학이 되어야 한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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